조성진 정치부 차장

제21대 국회 전반기 원 구성이 결국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일 미래통합당을 배제한 채 박병석 국회의장과 김상희 국회부의장을 선출했고 15일에는 법제사법위원장 등 6개 상임위원장을 뽑았다. 16대 국회 후반기부터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 온 관례는 무시됐다. 민주당 출신인 박병석 의장은 원내 교섭단체에 소속된 국회의원을 상임위원회에 강제 배정하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결정을 했다. 개회식도 열지 않고 민주당이 상임위를 가동하면서 21대 국회는 의원 선서를 하지 않고 활동을 시작한 국회로 기록됐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민주당의 밀어붙이기에 반발해 사의를 표한 후 지방 사찰을 돌며 칩거에 들어가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지자, 민주당은 다소 속도를 늦췄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23일 강원 고성군 화암사에서 주 원내대표를 만나고 24일에는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찾았다. 그러나 민주당의 기본 방침에는 변함이 없었고, 야당의 협조만 요구했다. 결국 야당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명분 쌓기용’ 만남에 불과했다.

21대 국회가 기형적인 모습으로 시작했으나, 민주당은 당당하다. 모든 걸 법에 따라 진행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절차적 합법성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유지되지 않는다.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은 헌법 같은 ‘제도’뿐 아니라 ‘상호 관용(mutual tolerance)’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라는 규범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상호 관용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집단을 인정하려는 의지이고, 제도적 자제는 합법적이라고 하더라도 법적 수단을 신중하게 행사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면 결국 극단적 대립과 정치 양극화가 심화해 민주주의의 위기가 초래된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이미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원칙에서 벗어난 바 있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은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게 오랜 국회 관행이었으나 민주당은 이를 무시했다. 통합당이 ‘위성정당’ 창당으로 맞서자, 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을 만들면서 자신들이 개정한 법의 취지를 형해화하는 데 동참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민주당이 원칙을 훼손했으나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주당이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압승하면서 일탈은 정당화됐고, 규범을 무너트리는 행위에 대한 내적 경계심은 오히려 더 낮아졌을 것이다.

21대 원 구성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민주당은 176석 대 103석이라는 의석 차를 무기로 앞으로도 ‘합법적인’ 국회 운영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해찬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는 수차례 “낡은 관행과 결별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화와 설득을 통한 야당과의 합의보다는 여당이 원하는 법안을 적시에 처리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통합당이 거세게 저항한다면 양대 정당의 대립은 더 심해지고 규범은 계속 무시될 것이다. 민주당이 그리는 ‘뉴 노멀(New Normal)’은 과연 역사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조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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