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으로 시작된 일본내 ‘K문학 붐’
대중적 에세이 인기 업고 세력 확장중
김수현作 ‘애쓰지 않고…’ 日서 최고 선인세 계약
피곤한 청춘들, 거대담론 아닌 일상 메시지에 공감
“K팝 스타가 읽었다” 입소문· SNS용 ‘친근한 그림’도 주효
◇“아이돌이 읽은 책, 찾습니다” =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사실 한국 출간 두 달 전인 지난 3월부터 일본에서 치열한 계약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전작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가 인기를 끌며, 새 책 ‘흥행’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BTS의 멤버 정국이 읽은 것으로 알려져 한국에선 100만 부, 일본에선 3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또 하완 작가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웅진지식하우스)도 동방신기의 유노윤호가 읽어 유명해졌다. 올해 1월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다섯 달 만에 9만 부가 팔렸고, 현재 일본 최대 온라인서점 아마존 에세이 분야 10위에 올라있다. 요즘 일본 출판계 사람들이 한국 책 관계자를 만나면 “아이돌이 읽은 책, 어디 또 없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한다는데, 수긍이 간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일본 계약을 중개한 김승복 쿠온 대표는 최근 한국 에세이의 일본 내 인기에 대해 “에세이도 한류의 자장 안에서 확산되고 있다. K-팝 아이돌이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팬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그 한 자리를 책이 차지했다는 것이 의미있다”고 전했다.
◇“일본 청춘도 피곤하다” = 거창한 시대 담론이 아닌 소소한 이야기, 위로의 메시지가 일본 독자들에게 통했다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전후로 한강, 정세랑, 최은영 작가 등이 꾸준히 주목받고 있지만, 파급력이나 판매 부수는 에세이에 못 미친다. 김승복 대표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요즘은 ‘피곤한’ 시절이 아닌가. 대중적인 책이 쉽고 빠르게 독자들에게 스며들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현 작가도 “유교 문화, 집단주의, 경쟁에서 오는 불안 등 양국이 비슷한 사회 분위기를 공유하고 있어선지, 일본 독자들의 감상평도 한국 독자들과 다르지 않다”고 전했다.
자연스레 일본 내 한국 에세이 출간은 급증하고 있다. 김 대표가 중개한 책만 해도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뿐 아니라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김영사) ‘그래도 괜찮은 하루’(위즈덤하우스)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허밍버드) 등 10여 종에 이른다. 대부분 일상의 통찰을 통해 소소한 위로의 말을 전하는 책들이다.
사실 힐링, 위로의 키워드로 소구되는 책, 즉 ‘제목만 봐도 위로가 되는’ 에세이는 오랫동안 일본 문학이 발신해온 현상 중 하나였다. 대표적인 작가로 ‘약간의 거리를 두다’(책읽는고양이)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소노 아야코(浦知壽子)를 비롯, 사노 요코(佐野洋子·1938∼2010), 사카이 준코(酒井順子) 등이 있다. 이들의 ‘나다운 일상을 산다’ ‘좋은 사람이길 포기하면 편안해지지’ 등은 한국 에세이와 결이 비슷하다. 다만 이 작가들은 이미 작고했거나 최소 50대 이상인데 반해, 요즘 일본에서 인기 있는 한국 에세이 작가들은 20∼30대로 젊다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인스타 세대, 글보다 그림” =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에세이들은 웃기면서도 어딘지 ‘짠’한 ‘공감의 그림’이 실려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글보다 훨씬 효과적인 그림들이 비주얼에 민감하고 예쁜 사진과 그림을 업로드하는 걸 즐기는 일본의 ‘인스타바에’ 세대들에게 주효했다는 의견도 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저자들은 본래 일러스트 작가들이다. 김수현 작가의 페르소나처럼 보이는 책 속 여성 캐릭터는 “난 너 마음에 안 들어”라는 말에 “어머, 나도”라고 ‘사이다’ 대답을 한다. ‘득도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린 하완 작가 책에는 수행자처럼 하얀 팬티 한 장만 걸친 남성이 등장해 차·보험·애인이 없는 자신을 걱정하는 이에게 “이런 인생 매뉴얼은 어디서 받아오는 거냐. 구청 가면 주는 건가”라며 응수한다.
에세이와 함께 한국 소설 인기도 계속되고 있다. 페미니즘 문학 담론을 이끌어낸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과 일본서점대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창비)도 주요 서점 상위권에 자리한다. 29일 일본 최대 오프라인 서점 기노쿠니야(紀伊國屋)의 해외문학 전체에서 두 작품이 나란히 4, 5위를 기록하고 있다. 도서관 대출현황을 보면, 그 인기를 보다 ‘친근하게’ 실감할 수 있다. 도쿄(東京) 메구로(目黑)구립도서관에 따르면, ‘82년생 김지영’은 지난 6개월간 가장 많이 대출된 해외 문학 3위이며 현재 300여 명이 대기 중인 ‘예약 순위 1위’ 해외 소설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K-문학’의 소설과 에세이 ‘쌍끌이’ 확산에 대해 마냥 긍정적인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도한 선인세 요구 등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김 대표는 “한국 책을 찾는 출판사들이 늘다 보니 한국에서도 매우 공격적으로 책 출간을 진행한다”며 “선인세를 올리는 방식은 건강한 출판문화는 아니다. 책이 잘 안 팔리는 경우 ‘신뢰’를 중시하는 일본 출판계가 돌아설 수 있다. 더 많은 한국 책이 일본 독자를 만날 길을 막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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