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이 가시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15일까지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해 달라는 공문을 국회의장에게 보냈다. 최근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들을 모두 더불어민주당에 빼앗긴 미래통합당은 공수처법 자체가 위헌적이라는 입장 아래 법이 보장하고 있는 공수처장 임명에 대한 ‘거부권’을 최대한 활용할 방침이다. 지난해 12월 패스트트랙으로 통과된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위원은 야당 몫 2명을 포함해 7명이며, 추천위원 가운데 6명이 찬성해야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야당 추천 위원 2명이 공수처장 후보자 임명에 찬성하지 않으면 공수처 출범이 무기한 연장될 수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신속하게 공수처 출범을 강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공수처법 개정안이 법사위에 상정되더라도 ‘이견 조정 필요가 있는 안건’ 심사를 위해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이 요구하면 안건조정위가 구성돼 최장 90일까지 활동하도록 한 국회법이 버티고 있다. 법사위의 통합당 의원이 3분의 1은 되기에, 이들이 안건조정위 개최를 요구하면 법 개정을 추진하더라도 당분간은 공수처 출범이 불가능해진다.
이처럼 복잡한 법률적 함수관계보다 더 근본적인 게 있다. 야당에 공수처장 임명 거부권을 준 것은 준(準)사법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다. 그런데 그 제도를 없애 버리겠다는 말이 여당 대표의 입에서 서슴없이 나왔다. 권력의 오만함이 하늘을 찌른다.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한 여당이니 무서울 게 없다는 태도다. 그래서 과속(過速)한다는 게 느껴진다.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 수사 결과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다. 조국 가족에 대한 수사도 진행 중이다. 중앙선관위의 정무직공무원도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니, 부정선거 관련 수사도 있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인 검찰총장을 견제할 수단이기도 하다. 모두가 집권 세력의 명운이 달린 일이다. 하루속히 공수처를 출범시켜야 검찰의 공격권으로부터 민감한 정치적 사건들을 떼어내 공수처에서 마무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 아닌가.
그래서 공수처의 인적 구성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업무를 수행할 가능성은 더 작아진다. 특정 이념과 정치 지향을 가진 인사들을 어떻게든 공수처로 밀어 넣어 정권 비호 무사로 기능하도록 노력할 게 아닌가. 공수처 검사는 인사위원회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추천할 수 있고, 인사위원회는 처장, 차장, 처장이 위촉한 학자, 여당 추천 2명을 포함한 7명으로 구성하니, 얼마든지 처장 마음에 드는 사람들로 모두 앉힐 수 있다. 공수처 수사관은 아예 처장이 전적으로 임명한다. 결국, 무리해서라도 처장만 정권 비호형 인사로 임명해 버리면, 공수처를 전반적으로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렇게 위험한 기구를, 민감한 시기에, 오만하면서도 절실한 권력이 출범시키려 한다. 야당에 주어진 비토권이 절대로 무시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청와대와 여당은 야당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공수처장 추천 방식을 제시하라. 절대로 정권의 호위무사로 전락하지 않을 후보자들로 추천할 것임을 약속하고 그 잠재적 명단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들 또한 충분히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인사로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설치하려거든 제대로 설치하란 말이다. 그래도 야당이 거부하면 발목잡기 행태이므로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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