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경 경제부 차장

보안검색요원 등 비정규직 직원 1902명 직접 고용 결정을 계기로 촉발된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둘러싼 논쟁이 여전히 뜨겁다. 취업준비생들이 정규직 직원의 자리를 뺏는 조치라며 크게 반발하자 청와대는 이번 논란이 가짜뉴스로 촉발된 측면이 있다며 문제의 본질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사회 양극화 해소, 양질의 일자리 창출, 사회적 불평등 개선 등을 위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으로, 공공 부문에서 시작해 민간 부문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취업 준비생 입장에선 열불이 날 수밖에 없다. 정부에선 취업 준비생의 일자리와는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직고용 과정에서 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며 이는 채용 인원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연도별 총인건비 등에 따르면 올해 전체 공공기관 인건비 예산은 전년보다 2조7000억 원 증가했다. 매년 늘어나던 신규채용 인원은 2018년 3만3716명에서 2019년 3만3447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북한도 아니고 대통령이 순시 한번 했다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는 유사 전체주의적 시혜(施惠) 행태 역시 받아들이기 역겨웠을 것이다.

설사 이러한 불만이 가짜뉴스가 촉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문제의 본질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청와대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해도 본질적인 질문이 남는다. 정부 주도로 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과연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법인가. 이중구조 문제가 심각한 국가로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몇몇 선진국과 함께 우리나라가 꼽힌다. 1980년대 경제 환경이 악화됐을 때 일부 근로자를 보호한 채 처우가 열악한 주변부 노동시장을 새로 만드는 부분적 유연화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은 “정규직의 고용 보호가 존재하는 한 비정규직은 시장 불확실성에 대처해야 하는 기업이 상황 변화에 따라 노동비용을 조정할 수 있는 버퍼 역할을 한다”며 “이런 버퍼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자리 수는 훨씬 더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런 면에서 비정규직 일자리는 사용자에게도 중요하지만, 취업 역량이 낮거나 경력이 짧은 젊은이들이 노동시장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공공 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붐을 일으켜 민간으로 확산한다는 정부 의도는 극히 선하지만, 현실적으로 책임 있는 대안은 아니다. 정규직의 노동비용을 그대로 둔 채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도록 강제하면 노동비용으로 인해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은 정규직의 과보호를 줄여 양자 간 격차를 줄여가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는 청년 실업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독일, 프랑스 등이 거대한 압박 속에서 구조 개혁을 밀고 나가는 이유다.

“사회는 진실로 계약이 맞지만, 온갖 과학과 예술과 미덕이 협력해 만들어낸 결과다. 그러한 협력이 추구하는 목적은 수세대 만에 달성되지 않는다. 단순히 살아 있는 이들끼리의 협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 세상을 떠난 이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이들 간의 협력이다”라고 말한 에드먼드 버크의 말이 문득 가슴을 친다.
유회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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