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담당 기자에게 매주 금요일자 신문 ‘북리뷰’난에 실을 책을 선정하는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광고를 넣지 않고 3개 면을 할애하더라도 한 주에 소개할 수 있는 책은 20권 남짓합니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에는 200자 원고지 한 장 분량 정도의 지면만 허락됩니다. 매주 북리뷰 팀에 전달되는 책이 100권 안팎임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채택하지 못한 책들을 볼 때마다 책과, 또 그걸 만드느라 고생한 저자와 출판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일상이 미안함으로 점철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고전·고문헌 연구서를 볼 때면 미안하다 못해 짠한 마음입니다. 고전 문학이나 고문헌을 번역·해설하고 현재의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찾아내는 일은, 경우에 따라서는 일생을 바쳐야 할 정도로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책은 늘 뒷전으로 밀리곤 합니다. 한자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제목을 봐도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중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언론이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고 이들 책의 의미가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고전 연구자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최근 펴낸 두 권의 책 ‘다산과 강진 용혈’(글항아리), ‘상두지(桑土志)’(휴머니스트)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두 책 모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식을 섭렵한 다산 정약용의 면모를 다룹니다. 하지만 책 속에는 그보다 더한 발견이 담겼습니다. ‘다산과 강진 용혈’은 지금은 희미한 흔적만 남았지만, 고려시대 전남 강진에 용혈암이라는 불교의 성지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가톨릭 신자인 다산이 200년 전 이를 밝혀냈다는 사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상두지’는 유배지에서 조선의 국방 개혁 청사진을 그려 놓고도 역사의 두터운 먼지 속에 사장됐던 비운의 실학자 이덕리의 존재를 알려 줍니다. 이들보다는 덜 오래된 사료를 기반으로 하지만, 출판사 역사공간이 최근 펴낸 ‘일본의 군사적 침략과 한국주차군’(조건 편역), ‘군대 해산과 한국주차군의 독립운동 탄압’(김영숙 편역) 등은 한반도 주둔 일본군 사료 분석을 통해 개항부터 강제 병탄까지 일제의 침략 실태를 규명합니다. ‘항일혁명가 최호림과 러시아지역 독립운동의 역사’(반병률 편저, 한울엠플러스)는 잊혔던 항일혁명가 최호림의 자취를 추적합니다.
이처럼 고전·고문헌 연구는 역사에서 소외된 인물이나 사건에 조명을 비춤으로써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실에서 혹은 오래된 고택의 서재에서 고문헌의 먼지와 싸우고 있을 연구자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물론, 언론이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고 이들 책의 의미가 가벼운 것은 아닙니다. 고전 연구자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최근 펴낸 두 권의 책 ‘다산과 강진 용혈’(글항아리), ‘상두지(桑土志)’(휴머니스트)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두 책 모두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식을 섭렵한 다산 정약용의 면모를 다룹니다. 하지만 책 속에는 그보다 더한 발견이 담겼습니다. ‘다산과 강진 용혈’은 지금은 희미한 흔적만 남았지만, 고려시대 전남 강진에 용혈암이라는 불교의 성지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가톨릭 신자인 다산이 200년 전 이를 밝혀냈다는 사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상두지’는 유배지에서 조선의 국방 개혁 청사진을 그려 놓고도 역사의 두터운 먼지 속에 사장됐던 비운의 실학자 이덕리의 존재를 알려 줍니다. 이들보다는 덜 오래된 사료를 기반으로 하지만, 출판사 역사공간이 최근 펴낸 ‘일본의 군사적 침략과 한국주차군’(조건 편역), ‘군대 해산과 한국주차군의 독립운동 탄압’(김영숙 편역) 등은 한반도 주둔 일본군 사료 분석을 통해 개항부터 강제 병탄까지 일제의 침략 실태를 규명합니다. ‘항일혁명가 최호림과 러시아지역 독립운동의 역사’(반병률 편저, 한울엠플러스)는 잊혔던 항일혁명가 최호림의 자취를 추적합니다.
이처럼 고전·고문헌 연구는 역사에서 소외된 인물이나 사건에 조명을 비춤으로써 생명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실에서 혹은 오래된 고택의 서재에서 고문헌의 먼지와 싸우고 있을 연구자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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