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간 68국에 185만권 전달
30명 헌신적 자원봉사자 덕분
먼지 많이 마셔 파상풍 감염도
건강 허락할 때까지 계속할 것”
“동포에게 책 보내기는 한국어 보급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와 역사를 함께 보내는 것입니다.” 지난 20년간 68개 국가 재외동포에게 185만 권이 넘는 한국어책을 보낸 사단법인 해외동포책보내기운동협의회 손석우(77·사진) 이사장은 2일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은 경제 성장을 이룩한 것은 경제인들과 국민이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지만, 징검다리 역할을 한 해외동포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설립된 협의회는 20년간 연간 9만 권이 넘는 책을 각국 동포사회에 전달했다. 지난달 9일에도 1만여 권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의 비영리단체(KEPPO)에 보냈다. 책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예방하는 마스크 1000개, 한복 15벌, 태권도복 15벌도 발송했다. 국내 군부대나 교도소, 노인정, 농어촌 오지에 보낸 책을 포함하면 200만 권이 넘는다. 한국문화원이나 한국학교 등에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지만, 먼 타지에서 한국어로 펴낸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목격한 손 이사장의 노력과 헌신의 결과다. 이 같은 공로로 그는 2008년과 2015년 대통령 표창, 2016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훈했다.
혼자 힘으로는 책을 모을 수 없었다. 연합뉴스를 비롯해 국내 신문사들과 ‘사랑의 책을 보냅시다’ 캠페인을 전개했고, 국민의 호응에 힘입어 많은 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두꺼운 책을 한 번에 수천∼수만 권씩 발송하다 보니 책을 내용에 따라 일일이 분류하고 포장하는 작업도 힘든 일이지만 운송비 등 경비도 만만찮았고, 재정난도 겹쳐 활동은 벽에 부닥쳤다. 10년 넘게 물심양면 지원해주던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 강남구청이 지난 2019년부터 지원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의욕이 많이 떨어져 손 이사장은 지난해 100차 발송 작업을 끝으로 사업을 접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보내준 책을 받아 든 동포들이 좋아하는 모습이 떠올라 책 보내기를 중단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책 보내기 사업은 마약과도 같아요. 힘에 부쳐 수백 번을 그만두려고 했다가도 번번이 책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오면 다시 몸을 추스르고 보내게 된다”고 했다. 책을 받고 고마워하는 동포와 자원봉사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목놓아 울기도 했다고 한다. 손 이사장은 “무엇보다 20년간 묵묵히 헌신해온 30명의 자원봉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을 보관할 공간이 없어 지하실에 몇 만 권을 뒀는데, 환풍이 안 돼 발송 작업을 하다 책 속 먼지를 많이 마셔 파상풍균에 감염돼 보름간 병원 신세를 진 일도 있다.
손 이사장은 1999년 농업 이민을 하기 위해 브라질에 날아갔다. 지인을 만나 현지 상파울루 한국학교 도서관을 방문한 그는 한국어로 된 책이 몇 권밖에 꽂히지 않은 것을 보고 이민을 포기했다. “가슴이 아팠어요. 책을 보내줘야겠다고 마음먹었죠. 당시 교장 선생님에게 귀국해 책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돌아와서 사비를 털고 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책 6000권을 부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한 게 20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갔다.
그는 “나이가 들다 보니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년을 이어온 만큼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할 것”이라며 “운동에 뜻이 있는 젊은이들이 계승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그러면서 책 모으기와 봉사활동(blog.naver.com/sds9119)에 참여해 달라고 했다.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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