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

추미애 법무장관이 지난 2일, 윤석열 총장은 ‘검·언 유착’ 의혹 수사에서 손 떼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넘기라는 지휘감독권을 행사했다. 좌면우고 없이 오로지 헌법 원칙에 따라 검찰총장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윤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해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윤 총장의 소신과 능력을 높이 샀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 있는 권력 눈치 보지 말라”며 그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게 아닌가? 그런데 그 칼날이 실제로 살아 있는 권력인 조국 일가,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울산시장 부정선거 사건 등에 이르자 윤 총장의 손발을 자르는 ‘검찰 대학살’을 시작으로, 그의 사임을 유도하는 희롱 섞인 언사가 설훈 의원 등 여권 인사들에게서 나오더니 여당의 일당독재 오케스트라에 맞춘 추 장관의 2차 검찰지휘권 행사가 나왔다.

법무장관은 영어로 ‘Minister of Justice’라 한다.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워터게이트사건 담당 특별검사 해임 명령에 항의하며 법무 장·차관이 사임한 선례를 주목해 보자. 법무장관, 검찰지휘권의 존재 이유는, 정치로부터 법과 정의를 지키라는 것이다. 판사나 검사나, 법학교육·국가공인 자격시험(사시·변시) 합격·사법연수원에서 똑같이 법관으로서의 훈련을 받은 법률가다. 판·검사는 담당하는 역할이 다를 뿐 법은 정의·바름과 한 몸이며 정치적 고려로부터 독립돼야 한다. 사법권 독립은 그 한 가지 제도적 표현이다. 검찰의 결정은 결국 법원의 심판을 받으며, 그것은 자유민주 체제의 핵심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맞는다.

법무장관은, 판사 출신 장관이면 더구나, 정부 정책과 관련한 법적 옳고 그름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관이지, 결코 법적인 잔꾀를 부리고 일러주는 법기술자여선 안 된다. 법무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감독권도 마찬가지다. 검찰총장의 올바른 검찰권 행사를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보장해 주는 것이 법무장관의 직무이지, 그것이 여당을 향한 것이라고 지휘권을 빙자한 방해는 결코 정의일 수 없다.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와 관련해 윤 총장이 소집한 대검 부장·국장회의 결론은 그것을 위법·부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알려졌으며, 수도권 검사장회의에서는 지휘 철회를 요청키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민주당 정부가 일당독재(다수독재)로 가는 마지막 관문을 넘느냐 아니냐의 변곡점이다. 대한민국의 중심 기둥인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의 토대가 되는 법 지배 원리(the Rule of Law)의 길인지, 법에 의한 지배 원리(the Rule by Law)의 길인지의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전자에서 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정의와 한몸이며 사법권 독립으로 대표되는 권력분립·견제와 균형의 원리와 함께 정치권력(살아 있는 권력)의 통제가 핵심 기능이다. 후자에는 일당 영도(領導)주의·민주적 중앙집권제 원리에 의해 권력분립·견제와 균형 원리는 없고 정치권력 통제의 기능도 없으며 일당이 지배하는 의회 제정 법률이 위에서 하층까지 일사불란하게 통제한다(북한·중국 등).

그동안 국회 법사위원장은 야당 몫이라는 관례가 형성돼 왔다. 어느 나라에서든 헌법·법률 못지않게 관례나 관습, 상식 등이 어우러져 자유민주주의가 형성·운영돼 오는 법이다. 영국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은 군왕(현 여왕)이 서명해야 효력이 발생하지만 그에게 거부권은 없으며, 의회 다수당 당수에게 조각을 위임하는 것도 관례이지 법이나 다수결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더 후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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