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뮤지컬 ‘마리 퀴리’의 옥주현, ‘베르테르’의 유연석·규현,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 ‘제이미’의 조권.  라이브·CJ ENM·쇼노트 제공
큰 사진부터 시계 방향으로 뮤지컬 ‘마리 퀴리’의 옥주현, ‘베르테르’의 유연석·규현, ‘어쩌면 해피엔딩’의 한 장면, ‘제이미’의 조권. 라이브·CJ ENM·쇼노트 제공
옥주현 ‘마리 퀴리’ 앙코르 공연 전격 합류
200석 소극장서 700석규모로 업그레이드
악기 수 늘리고 편곡도 다시… 스케일 확보

코로나 사태 속 ‘스타 티켓파워’ 업고 회생 모색
조권 ‘제이미’ 주인공 캐스팅… 제대후 복귀작
규현·유연석·엄기준·카이 ‘베르테르’도 눈길


지난 3월 중순 뮤지컬 ‘마리 퀴리’ 공연이 한창이던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 업계 최고 톱스타 옥주현이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공연장을 찾았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마리 퀴리’ 주연배우인 김소향의 초대를 받은 뒤 폐막을 보름가량 남겨놓고서야 어렵게 시간을 낸 터였다. 친구를 향한 격려 차원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공연장에 온 옥주현은 막이 오르기 무섭게 극 속으로 빠져들었다. 실존 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한 대담한 서사와 촘촘한 무대 연출이 뮤지컬 경력만 16년째인 베테랑 배우를 사로잡았다.

옥주현이 작품을 잘 보고 갔다는 소식을 들은 제작사는 올여름 앙코르 공연을 준비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대본을 소속사에 보냈다. 물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톱스타가 선택하기엔 객석 규모가 너무 작은 소극장 공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바로 며칠 뒤 소속사로부터 작품에 참여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옥주현이라는 일급 배우의 ‘티켓 파워’를 등에 업은 제작사는 공연장을 충무아트홀에서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로 바꿨다. 객석 규모를 210석 남짓한 소극장에서 700석이 넘는 중대형 극장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김소향과 함께 타이틀 롤로 ‘더블 캐스트’를 이룬 옥주현은 오는 30일 앙코르 무대 개막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다. 공연계의 한 관계자는 “한번 소극장에서 시작한 공연은 여러 차례 무대를 새로 올려도 소극장을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마리 퀴리’는 매우 특별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뮤지컬 시장이 여름 성수기를 맞아 ‘흥행보증수표’나 다름없는 스타들이 일제히 관객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캐스팅뿐 아니라 전체적인 라인업도 신작과 앙코르 공연, 고전과 스테디셀러가 골고루 조화를 이뤄 어느 해보다 풍성한 성찬이다. ‘감염병 쇼크’로 벼랑 끝 위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동시에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공연계가 스타 파워와 알찬 작품 목록을 발판으로 부활의 날개를 펼지 주목된다.

◇옥주현은 ‘마리 퀴리’, 조권은 ‘제이미’로 복귀

옥주현이 주연을 맡은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는 라듐을 발견해 저명한 과학자가 됐으나 뒤늦게 유해성을 깨닫고 고뇌하는 실존인물 마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여성이자 이민자로서 차별을 받으면서도 부당한 관습에 당당히 맞선 과학자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 2018년 일종의 시범 공연인 ‘트라이 아웃’을 거쳐 올해 2∼3월 초연한 ‘마리 퀴리’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입소문을 타며 평균 객석 점유율 80% 이상을 기록했다. 자본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실험을 펼친 초연 때와 달리 앙코르 무대는 보다 넓은 관객층을 겨냥한 대중성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뮤지컬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미국의 경우 ‘렌트’가 뉴욕 오프 브로드웨이의 소극장에서 공연을 했다가 대형 극장으로 옮겨간 적이 있지만 국내 창작 뮤지컬이 소극장에서 중대형 극장으로 확장된 것은 드문 사례”라며 “보통 1500∼2000석 안팎의 무대에 서는 톱스타가 오직 작품성만 보고 작은 규모의 뮤지컬을 선택한 용기도 평가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마리 퀴리’의 작곡을 맡은 최종윤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객석 규모에 걸맞은 음악적 스케일을 확보하기 위해 악기 숫자를 늘린 것은 물론 무대에 오르는 곡 전체를 새롭게 편곡했다”고 설명했다.

‘마리 퀴리’에 옥주현이 있다면 ‘제이미’에는 2AM 멤버 조권이 있다. 지난 4일 개막한 이 작품은 조권의 제대 후 복귀작이기도 하다. 조권은 지난 2013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로 처음 무대에 선 이후 ‘귀환’ ‘신흥무관학교’ 등을 거치며 확고한 뮤지컬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드래그퀸(여장한 남자 가수)’이 되고 싶은 고등학생 제이미의 꿈과 도전을 연기한다. 아이돌 아스트로의 메인 보컬 MJ와 뉴이스트의 렌도 같은 배역으로 뮤지컬에 처음 도전한다. ‘제이미’는 지난 2017년 영국 셰필드에서 초연한 이후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고 그해 바로 웨스트엔드로 무대를 옮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극장 문을 닫기 전까지 ‘오픈런(폐막일을 지정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공연)’ 형태로 관객과 만났다. 국내 초연은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매력을 거의 유사하게 구현하는 레플리카 방식으로 제작됐다.

◇신작·앙코르·스테디셀러 조화…“역대급 라인업” 평가

올여름 뮤지컬 라인업은 스타들의 이름값을 빼고 작품 자체만 놓고 봐도 역대 최고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베르테르’(8월 28일 개막)가 특히 관심을 모은다. 독일 대문호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으로 지난 2000년 초연 당시 ‘회전문 관람’ 열풍을 낳으며 국내에 1세대 뮤지컬 애호가를 만들어냈다. PC 통신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 팬 카페(‘베르테르를 사랑하는 모임’)가 처음 생긴 것도 이 작품을 통해서였다.

‘베르테르’에서 타이틀 롤을 맡는 것은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는 모든 남자 배우들의 로망으로 통한다. 운명적인 사랑과 절망 어린 좌절을 진폭이 큰 감정 연기로 소화하고 나면 배우로서의 역량이 한 단계 도약하는 것은 물론 단숨에 다양한 팬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베르테르’에는 시즌마다 국내 최고의 배우들이 참여한다. 이번 20주년 공연에도 가수 규현과 배우 유연석, 엄기준, 카이 등이 돌아가며 ‘베르테르’를 연기한다.

여름 성수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무대에 올라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작품 중에서는 ‘렌트’와 ‘오페라의 유령’이 눈에 띈다. 오페라 ‘라보엠’을 드라마의 뼈대로 삼은 ‘렌트’는 뮤지컬 시장의 스테디셀러와 같은 고전이며 초대형 블록버스터인 ‘오페라의 유령’은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흥행을 보장하는 작품이다. 현수정 공연평론가는 “신작과 재공연, 소극장과 대극장 무대가 골고루 잡힌 올여름은 역대 어느 성수기보다 풍성한 라인업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뮤지컬 업계에서는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올해 7∼8월의 관객동원 규모가 공연계의 부활 여부를 결정짓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행히 조짐은 나쁘지 않다. 코로나19라는 변수 때문에 지난 3∼4월 공연계 매출은 각각 90억 원, 46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전통적인 비수기로 분류되는 2월(212억 원)보다 100억 원 이상 급감한 수치다. 하지만 5∼6월 연이어 100억 원대 이상을 기록하면서 서서히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지난 4일 개막한 ‘제이미’는 첫 주말 동안 최고 점유율 90%를 기록했다.

개막이 한 달 이상 남은 ‘베르테르’도 1차 예매 오픈 이후 규현과 유연석이 출연하는 무대의 상당수가 벌써 매진됐다. 송일국이 주연을 맡은 ‘브로드웨이 42번가’도 최고 점유율을 83%까지 끌어올린 상태며,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역시 배우 전미도의 인기에 힘입어 연일 매진 행렬을 기록하고 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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