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을 풍자·비판한 대자보를 붙인 청년에게 유죄를 선고한 최근 판결로 대한민국은 일순간에 5공 군사정권보다 못한 나라가 돼버렸다. 지난달 23일 대전지법 천안지원 형사3단독 홍성욱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단국대 천안캠퍼스 건물 내에 대자보를 붙인 혐의로 기소된 김모(25) 씨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갓 군대를 제대한 취업준비생은 졸지에 전과자가 돼 ‘빨간 줄’이 그어졌다. 그의 범죄 혐의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문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니라 건조물 침입이라는 건 블랙코미디다. 경찰과 검찰, 법원 중 어느 한 곳만 멀쩡해도 대통령 비판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죽이는 이런 판결은 안 나왔을 것이다.
대통령선거 석 달 전 방송에 나와 ‘대통령이 된다면 납득할 수 없는 비판, 비난도 참겠다.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다’고 했던 문 대통령은 경찰의 무리한 수사 진행 과정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눈치가 백 단인 경찰은 권부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했을 것이다. 검찰은 여권의 융단폭격을 받고 있는 와중에 경찰의 송치 결과대로 기소하지 않았다간 또 한 번의 난리를 겪었을 것이다. 가장 심각하게 타락한 곳은 법원이다. 피해자이자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단국대 직원조차 “대자보로 피해를 본 것도 없고, 김 씨 처벌을 원치 않는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재판까지 갈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판사가 해야 할 소리를 대학 직원이 한 것이다.
법원의 타락과 위기를 보여주는 징후는 또 있다. 문 대통령의 ‘오른팔’ ‘복심’이라는 김경수 경남지사의 댓글 여론 조작 사건, 일명 ‘드루킹 사건’ 연루 2심 재판이 부지하세월로 늘어지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8년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찰 고발로 시작돼 지방선거 직전 터져 나온 드루킹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김경수가 재판에 넘겨진 게 그해 8월 24일이었다. 그가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게 지난해 1월 30일이었는데, 1년 5월이 지나도록 2심 재판은 아직도 시작 단계에 머물러 있다. 늦어도 지난해 7월 29일 전에 끝났어야 할 대법원 확정판결은 이러다 경남지사 임기를 마칠 때까지 나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드루킹 김동원은 올해 2월 13일에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총선 전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 감찰 무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비리 등을 수사하던 검찰 수사팀을 인사학살로 공중분해시킨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권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들이 입만 떼면 얘기하는 검찰 개혁이 자기들 입에 맞는 고분고분한 검찰을 만드는 것이라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니다. 검찰이 권한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에 떼주고 반신불수가 돼야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대통령과 여권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공수처는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검사를 손보는, 삼권분립 위에 서는 괴물이 될 것이다. 이러면 또 검찰과 법원은 알아서 ‘여권 무죄, 야권 유죄’를 만들어 주는 비루한 집단이 될 것이다. 지금 법치주의가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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