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한국핵정책학회 회장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7일 한국을 방문해 외교·안보 분야 핵심 인사들과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재개 방침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국가정보원장에 박지원 전 민생당 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서훈 국정원장, 통일부 장관에 이인영 의원 등이 지명돼 새로운 외교안보팀이 출범하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협상의 중재자 역할에 다시 한 번 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비건 특별대표의 방한을 앞두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해 미국과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찬물을 끼얹었다. 최 부상은 문재인 대통령이 미·북 대화 재개 필요성을 언급한 데 대해서도 북한의 생각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섣부른 중재 표명이라고 일축했다. 최 부상의 담화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옥토버 서프라이즈’(10월의 깜짝쇼)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궁지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하면서 하노이 딜을 다시 받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이다.

비건 대표가 한국에서 할 일은 두 가지다. 첫째는, 미·북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물꼬를 트는 것이다. 만일 11월 미 대선 전에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려면 사전 준비에도 시간이 충분치 않다. 이미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에게 여론에서 뒤지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만회하기 위한 깜짝쇼를 벌일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인종차별 시위, 실업률 폭등으로 엉망이 된 미 국내정치와 국제사회에서 실추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을 만회하려고 허울뿐인 비핵화 쇼를 다시 벌일 가능성도 있다. 한국 정부는 비건 대표에게, 만일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철저한 사전 실무 준비를 거쳐 내실 있는 회담을 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둘째는, 한·미 워킹그룹과 한국의 독자적인 대북 이니셔티브를 둘러싼 양국 간 이견을 조율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최근 북한의 대남 공세와 불만이 상당 부분 우리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조차 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쌓인 결과라고 보며,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인식한다. 북한의 핵 폐기 진정성은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워킹그룹 폐지는 그나마 유지되던 한·미 간 조율 시스템을 스스로 허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북한의 비핵화가 없는 한 대북 제재 공조를 유지한다는 점도 재확인해야 할 사안이다.

만일 한국이 북한의 비핵화 진전 없이 남북관계 개선에 조급증을 내서 ‘마이웨이’로 간다면 한·미 간 조율은 깨지고 다시 북한의 공허한 비핵화 약속에 농락당할 가능성이 크다. 문 정부의 새 외교안보팀은 코로나 사태 이후 국제정세 변화와 갈수록 심각해지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우리의 안보를 지키면서도 남북관계를 개선할 묘책을 찾아야 한다.

남·북·미 모두 ‘동상이몽’을 가진 상황에서는 현 정부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는 조급함을 경계해야 한다. 정부 내에서는 다시 ‘스몰딜’, 즉 북한의 영변 핵시설과 일부 추가 비핵화 조치를 대가로 대북 제재를 부분적으로 완화해 주자는 중재안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개념 정의와 로드맵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한, 그러한 거래는 다시 북한에 시간만 줄 뿐이다. 새 외교·안보 인사들은 예외 없이 대북 유화책을 주장해온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정부 밖에서 보는 시선에는 안보에 대한 우려가 작지 않다는 사실을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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