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짜장 맛집을 찾아서

마포구선 호텔출신 오너셰프가 짜장 볶고,수타로 뽑은 면발도 자랑하고
고추 함께 볶아 느끼함 잡은 무교동엔 매운맛이…
연희동선 물기 충분한 화교 가정식 이색적
청량리엔 고기를 ‘진흙’처럼 간 육미짜장…중구 직장인들은 볶음짜장 손꼽아


“뭐야? 짜장면에 제철이 있다고?” “만날 지방 다니며 제철 따지더니 네가 드디어 실성이라도 한 모양이구나.” 메신저 단체방에서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반응이 죄다 면박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짜장면에도 제철은 정말 존재한다. 바로 양파 때문이다. 국내 양파 수확 시기인 6∼7월은 양파를 많이 쓰는 중국집에서 음식이가장 맛있을 때다. 특히 짜장면, 그중에서도 간짜장이 맛있다. 이땐 양파가 아삭아삭 단단해 쉬이 물러지지 않으며 단맛이 유독 강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동서고금을 통틀어 양파를 가장 많이 섭취할 수 있는 음식은 간짜장이 제일이다. 제철 식재료가 귀한 여름철에 딱 맞는 메뉴로 짜장면을 올리며, 뛰어난 맛으로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짜장면 식당을 ‘푸드로지’가 소개하기로 한다. 이번엔 서울 수도권 위주다. 물기 흥건한 ‘짜장찌개’ 같은 짜장면은 잠시 제외했다.


◇셰프가 내는 불향…맛이차이나

신라호텔 중식당 출신 조승희 오너셰프가 상수동에서 시작, 지금은 전국적 명성을 얻어가고 있는 집이다. 메뉴 이름은 짜장면이지만 기름을 충분히 쓰고 전분과 물을 거의 넣지 않아 간짜장 느낌이다. 특히 점심시간 중에도 짜장을 여러 번 볶는데, 운이 좋아 바로 볶은 것을 먹자면 간짜장과 다름없다. 양파와 파, 애호박, 고기 등을 팬에 넣고 숙련된 웍 놀림(중국의 팬을 돌려 볶는 기술)으로 불향과 재료 고유의 맛을 잡는다. 빈 팬 가열부터 시작해 짜장소스 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총 10분 미만이다. 양파를 잘게 썰었지만 예상대로 그 아삭함이 살아 있다. 짧은 시간이지만 뜨거운 불에 골고루 볶인 춘장은 구수한 기름을 품고 감칠맛과 향긋한 불향을 온천지에 풍긴다.

짜장밥도 있는데 짜장면보다 비비기도 한결 낫고 건더기를 끝까지 다 먹어치우기에 좋다. 짜장면 레토르트 제품과 즉석조리 밀키트도 판매하니 집에서도 즐길 수 있다. 서울 마포구 독막로 68 2∼3층, 짜장면(밥) 7000원.


◇기본적인 옛날 맛…신성각

마포 공덕동 쪽에서 보자면 산꼭대기 효창공원에 숨어 있는(?) ‘동네 중국집’이지만 짜장면 마니아 사이에서 소문이 난 집이다. 점심쯤 문을 열고 재료가 떨어지면 바로 문을 닫아 쉽게 가기가 어렵다. 식사부에는 짜장면 종류 위주로만 파는 것도 이 집의 강한 특징(아! 짬뽕이 없다니). 수타로 면을 뽑아내는데 사실 ‘수타냐 아니냐’는 맛과 상관없는 별개의 문제다. 어떤 방식으로든 면을 뽑아 맛있으면 그만이다.

기본적으로 아주 옛날 맛이다. ‘짜장면계의 화석이니 평냉이니’ 하는 말을 듣는 이유다. 신성각 간짜장은 수타로 직접 쳐서 뽑아내 면발 굵기가 고르지 않은 대신 소다를 쓰지 않아 굉장히 부드럽다.

화력 좋은 불에 ‘웍’으로 빨리 볶아낸 아삭한 양파가 잔뜩 들어가 식감이 절묘하게 대비를 이룬다. 많이 비비지 않아도 된다. 얼핏 칼국수 면발처럼 보이는 면은 베어 물면 잘 끊어져 입안에서 소스와 함께 잘 섞인다. 고기는 육사(肉絲)로 길게 잘라 볶아 면발과 함께 먹기 좋다. 대신 간짜장 소스는 면에 비해 슬쩍 모자란 편이니 둘이 주문하면 먼저 양념을 붓는 것이 유리(?)하다. 서울 마포구 임정로 55-1, 간짜장 6000원.


◇한국식 매운맛…무교동 북경

짜장면이 한식이 됐으니 당연히 많은 발전을 했다. 특히 매콤한 짜장면은 느끼함을 덜어주는 대신 화끈한 맛으로 입맛을 돋운다. 무교동에서 ‘고추간짜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북경은 한국인 주방장이 주방을 맡고 있다. 인근 손님들이 때가 되면 즐겨 찾는 이 매운 간짜장의 인기비결에는 보편적인 짜장면에 대한 아쉬움이 모두 제거 또는 보충돼 있다.

자칫 짜장면의 기름기가 입에 겉돌 때가 있는데 이 집은 미리 매콤한 고추를 함께 볶으니 느끼함이 덜해서 좋다. 바로 볶아내 꼬들꼬들한 면에 충분히 입혀진 칼칼한 소스가 곁들여 볶아낸 다른 채소의 맛까지 살려준다.

일상에서 분실했던 입맛이 당장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주문 즉시 볶아서 주니, 뜨거운 온기와 코를 찌르는 향이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남는다. 가끔 쇠젓가락에 짜장을 비비기가 불편하기도 한데 그럴 필요가 없으니 짧은 점심시간에 흰 셔츠를 입고 가기에도 좋다. 고추간짜장도 매운데 이보다 더 매운 사천간짜장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매운맛 마니아들에겐 성지(?)임이 틀림없다. 서울 중구 세종대로 20길 23, 고추간짜장 9000원.


◇‘짜장면의 집밥 선언’…연희일품향

특이하다. 마르게 볶았지만 또 그렇게 물기가 적지도 않다. 요모조모 분명 간짜장이지만 이름은 ‘가정식 짜장면’이다. 명동에서 오랜 시간 명성을 쌓다가 본인은 잠시 쉬고 연희동으로 옮겨 이름한 ‘연희일품향’의 시그니처 메뉴다. 이름이 왜 가정식이냐고? 화교로서 짜장면은 충분히 가정식일 수 있다. 시중에 파는 메뉴와 달리 금방금방 만들어서 한 끼를 맛나게 먹던 메뉴로는 간짜장만 한 것이 없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중국집과는 다르게 기름을 충분히 썼다. 짜장면이 생각날 때마다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면 꽤 호강하며 산 셈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 143, 가정식 짜장면 7000원.


◇‘차라리 청량리로 갈까요’…홍릉각

육미짜장으로 소문난 곳이다. 육미는 원래 중국어로 로니, 즉 고기를 진흙처럼 갈아내는 조리법인 육미(肉泥)에서 나왔다. 하지만 실정은 유니, 육니, 육미 등으로 대부분 쓴다. 짜장면 마니아 사이에서 유명한 ‘청량리 홍릉각’(이렇게 불린다)은 다진 고기와 양파를 재빨리 볶아내 면에 얹어 먹는 육미간짜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어찌나 빨리 볶았는지 양파를 다른 집 간짜장보다 잘게 썰어 넣었지만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다. 고기는 부드럽고 춘장은 고소한 향내를 마구 풍긴다. 이름과 같이 재료를 ‘진흙’처럼 간 덕분에 쫄깃한 면발에 얹으면 잘 비벼지고 또 잘 넘어간다. 원래 2인분이 기준인데 짜장 양념을 충분히 내주니 처음부터 욕심부릴 필요는 없다. 서울 동대문구 약령시로 90, 육미간짜장 8800원.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비비지 않아도 짜장이다…원흥

중구 다동 일대 직장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중국음식점이다. 화상이 경영하는 곳으로 짬뽕과 짜장면, 고기튀김이 인기다. 워낙 강력한 이 집 짬뽕의 명성에 짜장면이 가렸지만, 짜장면 자체의 맛도 썩 훌륭하다. 아쉽게도 메뉴 중 간짜장은 없으며 대신 볶음짜장면이 있다. 몹시 게으르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비비기 싫어하는 이’들에게 사랑받는 볶음짜장면은 이름처럼 춘장에 면을 미리 볶아내는 방식이다.

기름을 살짝 태운 짜장에는 불향이 가득하고, 저어보면 고기 살점이 시도 때도 없이 툭툭 튀어나온다. 양배추와 양파는 곱게 갈아낸 유니식이지만 고기만큼은 미트칩 크기로 잘라서 볶기 때문이다. 달착지근하면서도 짭조름한 양념에 불향을 내는 소스는 나무랄 데 없지만 잘게 갈아 아삭한 양파 맛을 볼 수 없는 것은 살짝 아쉽다. 서울 중구 다동길 46, 볶음짜장면 2만 원(2인분).

놀고먹기연구소장


■ 중식의 大家가 말하는 ‘간짜장’

“신선한 야채 총집합… ‘요리’라 불러도 좋은 ‘식사’”


롯데호텔 도림 여경옥(사진) 셰프(상무 총괄이사)는 중식의 대가로 꼽힌다. 자타가 인정하는 중화요리의 미식 세계를 개척한 인물로 꼽히는 여 셰프가 생각하는 ‘간짜장’은 무엇일까 궁금해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요리부에 들어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식사, 즉 가장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요리가 아닐까?”

간짜장은 요리처럼 바로 조리해야 하며 물기가 없으니 재료를 충분히 넣어야 한다. 면 없이 고기와 채소만 좀 더 넣으면 진장로스(京醬肉絲)처럼 어엿한 요리가 된다는 얘기다. 여 셰프는 “물론 물기 많은 짜장이 아닌 간짜장에만 해당되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여 셰프는 “식당 주인 입장에서 간짜장은 매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며 “아예 간짜장만 한다면 모를까, 바쁜 시간에 어쩌다 간짜장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이 매우 바빠진다”고 귀띔했다. “주방 인건비가 오르면 간짜장이 가장 먼저 제값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간짜장은 짜장면·우동과는 달리 비싼 음식 축에 들었다”고 말했다. 주방에서 손해라면, 손님 입장에서 간짜장은 이득이라는 얘기 아닌가.

여 셰프는 “이제 짜장면은 한식 범주에 들어섰지만, 중식 요리법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화교가 하는 집과 한국인 주방장이 하는 집이 조금씩 서로 다르다”고 했다. 화교가 만드는 간짜장은 기름기가 조금 더 많아 풍미가 좋고, 한국인 주방장은 면을 졸깃하게 잘 뽑아낸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여 셰프는 또 “밀가루 등 열량이 좀 높아서 그렇지 짜장면, 특히 간짜장은 양파·양배추·파·애호박 등 신선한 채소와 콩 발효장 등이 들어가는 건강한 음식”이라고 덧붙였다. 양파에 함유된 케르세틴 성분은 혈관 내 지방을 분해하고 축적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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