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덕(1935∼1989)

강원 태백산맥을 넘어 삼척이 시작되는 첫 동네에서 태어난 저는 정말 자연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봄에는 소 풀 먹이고 겨울방학이면 하루에 두 번 지게로 나무를 해 날라서 장작까지 만들어야 일과가 끝나곤 했습니다. 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읍내로 나가서 하숙과 자취를 하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이 때문에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 했고 어린 나이에 아버지,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과는 계속 떨어져 지내야 했는데 입대를 한 달 앞두고 집으로 와서 같이 보낼 기회가 주어져 즐겁게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입대 후 아버지가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손편지를 써서 고향 소식을 전해주셔서 군 생활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땐 잘 몰랐는데 결혼해서 제 아들이 입대했을 때 편지를 써서 보내려니 그게 참 어렵더군요.

어버지는 약주를 너무 좋아하셔서 어머니께 혼도 많이 났습니다. 일하다가도 술에 취해서 잠드시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정이 많고 자식들을 사랑하는 맘은 너무도 깊으셨습니다. 당신은 고무신을 신으면서 자식들에겐 운동화를 사주셨고, 가끔 읍내에 나오면 꼭 맛있는 음식을 사주곤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인가 봅니다. 집에서 도보로 40여 분 떨어진 곳에 논이 있어서 모내기 전에 항상 퇴비 작업을 했는데, 어머니께서 아버지 도시락을 배달하라고 하셨지요. 동생이랑 둘이 가는데 너무나 맛있는 냄새가 나서 풀어보니 생선구이가 반찬으로 있었고, 나도 모르게 동생과 같이 모두 먹어버렸습니다. 일하면서 배고프실 텐데 혼날까 봐 무서워서 가지도 오지도 못하고 논두렁 밑에 숨어 있는데 아버지께서 언제 보셨는지 오라고 하더니 한마디도 나무라지 않고 맨밥만 드시면서 웃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군 생활이 20여 일쯤 남았을 때 선임이라 아침도 먹기 싫고 해서 내무반에 누워 있는데 일반 전화가 왔으니 받으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군대 생활하면서 한 번도 일반 전화가 온 적이 없기에 정말 느낌이 안 좋았습니다. 동네 친척 아저씨였는데 놀라지 말라면서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했습니다. 정말 눈앞이 캄캄하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버지 나이가 54세였는데 참으로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군 생활을 하면서 휴가는 4∼5회 간 것 같은데 마지막 휴가 복귀 때 아버지께서 한 번도 그러지 않으시다가 건넛마을 서낭당까지 배웅해 주셨는데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공직에 합격했을 때, 결혼식 때, 첫아이를 낳았을 때 어버지가 너무도 보고 싶고 그리웠습니다. 다들 할아버지가 손자 이름을 지어주던 시기여서 더욱더 그랬습니다. 입대 전, 살아생전 그 좋아하시던 약주 한 병 못 사드린 게 정말 마음이 아프고, 기억에 남아 지워지지 않습니다.

보고 싶은 아버지! 그리운 아버지! 당신이 돌아가신 지 벌써 31년이 되었네요. 지금도 낡은 사진 속의 당신을 보면서 많이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매년 봄 기일쯤에 산소에 찾아가지만, 그리움은 나이가 들수록 더해만 갑니다. 이제 제 나이가 아버지 돌아가실 때 나이가 돼 버렸네요. 제가 자식을 셋이나 낳았습니다. 아버지 손주들은 다 제 할 일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하늘나라에서는 젊게 잘 지내고 계시죠?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들 이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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