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영웅’ 혁혁한 전과
해방직후 월남… 軍창설 기여
미군, ‘명예 미8군사령관’ 위촉
백 장군은 1920년 평남 강서군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빈농이었고 7세 때 부친(백운상)이 작고하자 모친(방효열)은 삼 남매를 데리고 평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교사가 되기 위해 당시 이북 지역 수재들만 모인다는 평양사범학교에 진학했으나 군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사범학교 졸업 2년 만인 1941년 12월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한다. 백 장군은 임관 후 1943년 간도특설대로 배치된다. 일각에선 그의 간도특설대 활동만을 놓고 ‘친일파’로 매도하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친일 행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해방 직후 민족주의자인 조만식 선생의 비서로 활동한 것에 비춰 당시에는 백 장군의 간도특설대 경력을 문제 삼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정치적 프레임에 따른 ‘친일 논란’으로 보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백 장군은 해방 직후 평양에서 활동했으나 김일성이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가 된 후 1945년 12월에 월남했고 1946년 국방경비대의 중위로 임관해 한국군 창설에 기여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1사단장이던 그는 수차례 북한군과 교전을 벌이며 혁혁한 전과를 거둔다. 대표적인 업적은 다부동전투로, 당시 그는 퇴각하던 부하들을 막고 “내가 물러서면 너희들이 나를 쏴라. 너희들이 물러서면 내가 너희들을 쏘겠다”고 독려한 이야기는 유명한 전설로 남아있다. 당시 전투에서 국군이 패했다면 낙동강 전선을 유지하지 못해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반격은 어려웠다는 것이 전쟁사 연구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그는 또한 전쟁 중 중공군의 1951년 춘계 공세 저지를 비롯해 후방지역의 빨치산 토벌작전 등 전후방을 넘나들며 전투를 이끌었다.
백 장군은 육군참모총장과 합동참모본부의장을 거쳐 1960년 5월 31일 예편하지만 한·미 군 당국의 교두보 역할은 계속해 나갔다. 주한미군은 2013년 그를 ‘명예 미8군사령관’으로 위촉해 각종 공식행사 때 주한 미8군사령관과 같은 예우를 해왔다.
정철순 기자 csjeong110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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