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기후변화

기후변화는 역사적으로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변수가 되기도 했다. 칭기즈칸, 명나라, 바이킹에 이르기까지 동서양 문명사가 기후변화로 뒤바뀌었다.

14일 문화일보 취재에 따르면 미국 국립과학협회보는 13세기 초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의 경우 기후 덕분에 유라시아를 지배했던 대표적인 ‘기후 전사(climate warrior)’로 꼽힌다. 칭기즈칸이 제국을 건설한 13세기 무렵은 혹독한 추위가 특징인 초원 기후의 중앙아시아가 1000여 년에 걸쳐 가장 온화하고 습윤한 기후였으며, 이 같은 유리한 기후가 몽골이 정치적·군사적 영향력을 형성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13세기 초 몽골의 유리한 기후는 목초 생산량과 말을 포함한 가축 수의 증가를 가져온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바이킹은 기후 변화로 흥망을 겪었다. ‘속도와 폭력성: 왜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의 변곡점을 두려워하는가’의 저자 프레드 피어스에 따르면, 10∼11세기의 온화한 날씨는 바이킹들이 ‘붉은 에릭(Erik the Red)’의 영도 아래 그린란드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붉은 에릭의 아들 리프 에릭슨은 10세기 무렵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북아메리카 뉴펀들랜드 지역을 발견한 ‘바이킹 왕’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따뜻한 날씨에서 시작된 바이킹의 모험은 날씨가 추워지며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바이킹이 정착한 그린란드 남부가 400년 뒤 15세기 중반 무렵부터 추워짐에 따라 수확량이 감소했고, 바다가 얼어붙으면서 유럽으로부터 식량을 공급받지 못하게 됐다. 바이킹들은 그럼에도 따뜻한 날씨에나 적합했던 닭 사육과 곡식 재배를 고수했고, 그 결과 충분히 먹지 못해 과거 175㎝에 달하던 평균 키가 152㎝ 정도로 줄어들었다. 전투력의 약화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동양도 비슷한 역사가 반복됐다. 3세기에 걸쳐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중국의 명나라는 1630년쯤부터 기록적인 가뭄으로 쇠락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과거 약 2000년에 걸쳐 가장 약화된 몬순 탓이었다. 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패이건은 중국의 당시 상황을 ‘동시대 유럽의 혼돈보다 더 무질서했던 시기’로 묘사하며 “양쯔(揚子)강 유역은 전염병과 홍수, 기근 등에 시달렸으며, 이처럼 취약한 현실은 정치적 혼란과 이민족의 침략을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역사학자 토니오 안드래이드에 따르면, 실제 17세기 중반의 중국은 1370년쯤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통틀어 가장 건조하고 추운 날씨를 보였다. 하지만 숭정제의 명나라는 이러한 위기에 대처할 만한 능력과 의지를 갖추지 못했고 결국 국력의 약화를 초래했다.

송유근 기자 6silver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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