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섭(1939∼2010)

“할아버지 아니거든요! 우리 아빠예요!”

삼 남매가 입을 모아 목청껏 외치는 모습을 아버지는 오히려 즐기셨던 것 같다. 어린 자식들은 모르는 사람들의 말이 마냥 야속했는데 백발의 아버지는 허허 웃고만 계셨다. 50대 늦은 나이에 줄줄이 2녀 1남을 두신 아버지는 손주뻘인 자식들을 참 많이도 사랑하셨다.

1988년생인 첫딸은 백일도 안 돼서 88서울올림픽 경기장을 구경하러 갔다. 희고 고운 얼굴이 타면 안 된다며 검은색 고급 세단의 창문엔 햇빛을 막는 신문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덕분에 언니는 아직도 잡티 없이 하얀 고운 피부가 제일 큰 자랑이다. “역사적인 순간을 우리 딸이 놓치면 안 되지.” 아버지의 자식 사랑은 유난하시지 않은 적이 없었다.

당신을 쏙 빼닮은 작은딸과 5대 종손인 아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자식들을 손수 씻기던 목욕물은 약수가 아니면 안 됐다. 입는 것, 먹는 것, 모든 걸 최고급만 고집하셨다. 삼 남매는 젖병을 떼기도 전에 한의사인 아버지가 손수 달여주신 보약을 먹었다. 그 덕분인지 유독 작은 체구의 작은딸도 유치원에서 팔씨름해서 져본 적이 없었다.

10대가 되자 나이 드신 아버지가 창피했다. 지금처럼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연예인 부부나 ‘쉰둥이’가 흔할 때가 아니어서 친구들에게 저 할아버지가 우리 아빠라는 말은 곧 죽어도 하기가 싫었다.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은 원망으로 변했다. 매일 아침 등굣길 창문에서 큰 소리로 배웅하시는 아버지를 본 척도 안 했다. 그러면 아버지가 그만두실 줄 알았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반주로만 드시던 술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드셨다. 술은 또 술을 불렀다. 아버지는 날로 쇠약해지셨고 당뇨합병증과 중풍이 아버지를 괴롭혔다. 성인이 된 자식들은 아버지의 아픈 모습을 보기 두려워 밖으로만 돌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고독하게 세상을 떠나셨다. 내가 대학교 2학년에 재학할 당시,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얗던 금요일 아침 아버지는 일반병실에서 평온한 얼굴로 숨을 거두셨다. “이제 너희 셋 다 키워 놨으니 아빠는 이만 쉬러 갈게.” 시신을 마주한 적막한 순간에 어쩐지 이런 말이 들렸다.

아빠! 아빠 닮은 작은딸이 벌써 서른이 훌쩍 넘었습니다. 또래랑 다른 게 싫다고 그렇게 아빠를 탓하던 못난 자식이 이제는 평범하게 살기 싫다고 아직도 이리저리 방황하고 다닙니다. 아빠 술 드시는 거 싫다고 그 난리를 치더니 고단한 하루 끝에 마시는 쓰디쓴 소주의 달콤함도 압니다. 딱 한 번이라도 아빠랑 같이 술 한잔하고 싶어요.

그리고 아빠, 나 사실 하루도 안 빼고 늘 아빠를 존경했어요. 아빠는 은퇴해서 장성한 자식들 효도 받으며 호강해야 할 시기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계셨어요. 인생에서 한 번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아빠가 교문에서 기다려 주시던 비 오는 날로 갈 거예요. 아빠 모습이 보이면 큰 소리로 부르면서 뛰어가 아빠를 껴안고 말하려고요. 부족함 없이 낳아 길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 정말 많이 그립고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딸 심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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