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로 일했던 여직원으로부터 ‘성(性)범죄’ 혐의로 고소된 다음날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피소(被訴) 사실에 대한 불법(不法) 유출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피해 여성 측은 박 전 시장 영결식이 끝난 13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박 시장의 구체적 행태를 밝히면서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에게 모종의 경로로 수사 상황이 전달됐다”고 했다. “서울시장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기 전에도 증거인멸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을 목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 시스템을 믿고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고소할 수 있겠는가” 하고 개탄했다.

박 시장 성범죄 혐의의 은밀한 대처 통로가 있었다는 것으로, 또 다른 국정농단 행태로도 비친다. 피해 여성의 변호사 등과 함께 회견에 나선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박 시장이 피해 여성에게) 메시지를 보낸 휴대전화의 신속한 압수수색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서울지방경찰청) 담당 수사팀에도 절대 보안을 요청했다”고 했다. “피해 여성이 고소장 접수 후 정보가 새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곧바로 시작된 조사를 다음날 새벽까지 받은 것”이라고도 했다. 피해 여성 측이 박 시장 측에 고소 사실을 전한 적은 “일절 없다”고 확인한 만큼, 경찰이든, 청와대든, 또 다른 경로를 거쳐서든 수사 초기 기밀의 유출 정황은 분명하다.

고소를 접수한 서울지방경찰청, 대통령령인 청와대비서실업무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고소 내용을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경찰청, “고소 당일 저녁에 경찰의 보고를 받았다”는 청와대 등은 모두 박 시장에게 전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혐의 대상에서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 기록 등을 통해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검찰이 수사해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성범죄 방조(幇助) 혐의도 당연히 수사해야 한다. 피해 여성 측은 “피해자가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피해를 사소하게 여기거나, 비서 업무를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로 보는 반응 등이 이어져 더 이상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보호를 받고 싶었다”는 피해 여성의 눈물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신속·철저한 수사가 필수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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