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자체는 물론 이 사건에 대응하는 더불어민주당의 행태가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자아낸다. 사건의 진실 규명과 피해자 우선 배려라는 상식적인 접근 태도를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위력에 의해 피해자의 기본인권이 침해당했다는 사안의 본질을 인지하고 소속 정당으로서 책임을 다하려는 조치가 당연했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의 과거 업적과 사적 관계에 얽매여 국민 정서와 이반된 논평이 난무한다. 국민이 보기엔 민주당이 상상도 못 한 사태에 직면해 균형 감각을 잃고 허둥대고 있다.

진보 세력을 탐탁잖게 여기는 시민들도 그들이 양성평등과 사회적 약자 보호 등에 기여한 바 있음을 내심 인정해 왔다. 그리고 과거 성추행과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 민주당이나 진보 세력이 보여준 준엄한 비판이 진보·보수에 관계없이 준용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 성추행 사건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언사는 그러한 믿음이 틀렸음을 깨닫게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진보 세력의 조건적 정의라는 자기방어의 이중성을 보게 된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공개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당의 입장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변명은 설득력 없다. 이러한 유형의 사건에서 통상적인 지칭인 ‘피해자’ 대신 ‘피해호소인’ 또는 ‘피해고소인’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민주당의 인식을 확연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공소권이 없는 사건에서 피해자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다는 형식논리적 주장에 끄덕이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생경한 용어에 집착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의구심만 불러올 따름이다.

이번 성추행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올바른 태도는, 가해자가 박원순 전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사실 규명을 위한 적극적 노력과 공당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지는 조치를 하는 것이다. 민주당 대변인의 대리사과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비등하자 이해찬 대표가 15일 직접 ‘통절한 사과’를 했지만,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특히, 수사권도 없고 더욱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서울시에 진상조사를 요청한 것은 부적절하다. 검찰이나 특검을 통한 진상조사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 통절한 사과에 걸맞은 조치다.

더 나아가 내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하지 않겠다고 공표할 때 민주당의 반성이 통절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준수하겠다고 대국민 약속을 하면 된다. 그런데 벌써 해당 당헌 내용을 수정해서라도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당에서 언급된다. 필요에 따라 폐기할 당헌이라면 애초 당헌에 담지 말았어야 했다. 심지어 성추행 사건은 부정·부패가 아니므로 당헌 제96조 2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억지는 실소마저 잃게 한다.

성추행 사건은 일종의 합의된 이슈다. 조국 전 장관 사태에서 벌어진 진영논리의 대결과는 다르다. 최근 리얼미터 설문조사에서 성추행 의혹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64.4%로 조사가 필요 없다는 응답 29.1%의 2배가 훨씬 넘었다. 특히, 20·30대에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조사 필요성에 찬성하는 비율이 70%에 이르렀다. 이번 사태에 대처하는 민주당의 최선책은, 진상 규명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당헌에 따라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것이 ‘통절한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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