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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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력 코드 / 마커스 드 사토이 지음 박유진 옮김 북라이프

창조성은 가치 만들려는 충동
우리 뇌속에서 발달해온 코드

AI,미술·음악·수학 등서 활약
코드 학습해 인간 능가할수도

AI가 만든 작품엔 ‘자아’없어
아직은 허무하게 새로울 뿐


600만 년 전, 지구에 인류가 출현했다. 도구를 만들어 인류가 처음 자신의 창조성을 증명한 것은 260만 년 전이다. 그러나 인류의 창조 욕구가 분출한 것은 10만 년 전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된 물감 제작용 도구 세트가 증거다. 이후 창조 활동은 꾸준히 발전해 4만 년 전에 이르러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인도네시아 마로스 동굴 벽에 손을 대고 입에서 물감을 뿜어 남긴 선명한 손자국이 있다. “이것이 내 흔적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오랫동안 예술적 창조성, 즉 “인간 존재의 의미를 높이고 넓히고 바꾸는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특별한 능력”은 인간만의 특성으로 생각됐다. 그러나 기계가 학습 능력을 획득한 지금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기계가 예술을 배울 수 없을까. 알파고의 등장 이후 미술·음악·문학·수학 등 창조의 영역을 정복하려는 인공지능(AI)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다. 연일 AI가 음악을 작곡하고, 그림을 그리며, 시나 소설을 썼다는 소식이 쏟아진다.

인류는 놀라움과 두려움, 호기심과 착잡함 등이 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AI 예술품의 탄생을 지켜보는 중이다. 마음속에는 질문이 가득하다. 도대체 창조성이란 무엇인가. AI는 정말 예술가인가. 코드가 생성한 예술 작품의 수준은 어떠한가. 만약 기계가 무언가를 창조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되는가. ‘창조력 코드’에서 마커스 드 사토이 옥스퍼드대 교수는 수학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이러한 질문에 하나씩 답해 간다. 설명은 친절하고 어조는 상냥하며 내용은 논리적이다. 덕분에 이 책은 ‘수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아름다운 대답이고, AI의 세계에 대한 탁월한 입문서이며, 창조성의 비밀을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서가 된다.

저자에 따르면 창조성은 “새롭고 놀라우며, 가치 있는 무언가를 내놓고자 하는 충동”이다. 이 충동은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로 우리 뇌 속에서 발달해 온 코드”다. 우리의 창조가 코드의 형태로 이뤄진다면, 그 안에는 우리가 아직 알지는 못하지만 어떤 알고리즘이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가 다양한 자극을 수용해 세계의 패턴을 학습함으로써 이러한 코드를 획득하듯이, AI 역시 이 코드를 학습해서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인지과학자 마거릿 보든의 견해를 빌려 저자는 이 코드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방법을 탐구, 접목, 변혁 등 세 가지로 나눈다. 탐구는 이미 알려진 영역의 변경을 더듬어 가면서 기존 규칙의 적용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다. 인간 창조 행위 중 97%가 여기에 속한다. 접목은 서로 다른 두 개념을 접붙여 새로운 결과를 만드는 일이다.

인간의 창조성은 세계의 무질서 속에서 어떤 질서를 발견하는 능력이다. 인간은 이 일을 무척 잘한다. 밀림의 무질서 속에서 신속히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 생존에 아주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는 최근에야 강화 학습의 원리를 발견함으로써 이러한 능력을 획득했다.

알파고는 탐색적 창조력을 가졌음을 이미 입증했다. 이세돌과의 두 번째 대국에서 제37수로 5선에 검은 돌을 놓은 것은 이전의 인간 바둑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종반전에 가서 이 돌의 위치가 승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 이세돌은 네 번째 대국 제78수로 인간의 창조성이 AI와 함께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알파고는 창조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인간의 창조성을 대신하기보다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패턴을 찾아 줌으로써 인간의 창조성을 증대하는 쪽에 가까웠다. 예술적 AI는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을까. AI 예술의 성과는 눈부시다.

미술에서 ‘넥스트 렘브란트’는 렘브란트의 초상화들을 학습해서 전문가들조차 구분할 수 없는 렘브란트풍 그림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이언 쳉이 만든 설치 작품 ‘밥(BOB)’은 관람객들과 상호 작용하면서 스스로 한없이 진화한다. 음악에서는 ‘에미’가 쇼팽 등의 위대한 음악가들의 곡을 학습해서 패턴을 발견한 후 비슷한 음악을 창작해 냈다. 컨티뉴에이터는 재즈 음악가의 연주를 학습한 후 즉흥연주를 했는데, 이 연주는 그 음악가의 스타일과 비슷할 뿐만 아니라 미처 음악가가 생각하지 못한 연주 방식도 알려줬다. 문학에서 AI 소설가 보트닉은 ‘해리 포터’를 학습해서 짤막한 에피소드를 새로 창조함으로써 팬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AI가 아직 창조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창조성을 참신하고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능력에 가두는 것은 자본주의적 편견에 불과하다. 창조는 무엇보다 자유의 실현이고,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자신의 내면을 보여 줌으로써 타인과 소통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이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AI가 만든 작품들에는 ‘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기존의 예술에 가까우나, 그저 허무하게 새로울 뿐이다. 이는 아직 AI에 드러내고 싶은 고유한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미래의 어느 날 AI가 의식을 가졌을 때, 우리가 AI와 대화할 방법 또한 예술을 통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464쪽, 2만 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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