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영(1927∼2019)

어머니, 그곳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고생하는 분은 없지요? 평안히 지내세요? 50년 만에 상봉하신 아버지와도 잘 지내시지요?

지난해 11월 8일 금요일, 퇴근하기엔 아직 이른 오후 4시쯤 대구에 있는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2013년 2월 설 명절 며칠 전에 응급실로 가신 이후 7년째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오후 6시쯤 어머니는 아흔셋을 일기로 끝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막내는 아직 서울도 벗어나지 못했는데.

어머니는 마흔을 넘어서 낳은 늦둥이가 제대로 재롱을 피우기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혼자 되신 이후 3교대 염색공장에서 밤새 허드렛일을 하시는 등 환갑이 넘어서까지 항상 일하셔야 했습니다. 늦둥이인 저를 포함해 삼 남매를 홀로 키우시느라 손에 물이 마르는 날이 없었고 항상 손가락은 굳은살로 가득했던 어머니. 그러나 뜻하지 않게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지 몇 년이 지나서는 굳은살 가득했던 손이 아기처럼 몰랑몰랑해지고, 흰 머리카락 아래로 새로이 올라왔던 검은색 머리카락이 눈에 선합니다.

치매로 인해 어머니의 기억은 주로 당신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경북 성주군 용암면 죽전리 외가 댁에 머물렀습니다. 아주 가끔은 저를 알아보지 못할 때도 있었으나 갈 때마다 손수 밥을 지어주시겠다고 가마솥을 찾으시고 오랜만에 와서 오늘 저녁은 자고 가야 하는데 “빈방이 없네”라고 아쉬워하셨던 어머니.

외사촌이 병문안을 왔다 가면서 “고모 다음에 또 뵈러 올게요”하는 인사말에 “내가 병원에 있다고 빈말하면 안 된다”고 정색하시던 모습을 보고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추모공원이 대구에 있는지라 코로나19 여파로 아직 추모공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뵙질 못했네요. 어머니 그리는 마음이 절실하지 않아서인지 하늘나라로 떠나신 지 벌써 8개월이 지나가도록 제 꿈에 한 번 다녀가시지를 않네요. 너무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첫 꽃놀이는 가셨나요?

주위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던 어머니처럼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훗날 하늘나라로 올라가면 이번에는 아버지랑 같이 살뜰히 잘 모실 테니 혹시라도 처음 보는 사람인 양 모른 척하지 마세요.

막내 신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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