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시진핑 ‘홍콩 중국화’ 강행에
세계 각국 對中정책 전환 뚜렷
美 홍콩 제재에 英 화웨이 퇴출

홍콩 보안법 사태 침묵 文정부
中입김에 흔들리는 나라 전락
北에 ‘올인’ 말고 현실 직시해야


국제사회의 대중 기류가 싹 달라졌다. 무역전쟁에 이어 화웨이, 코로나19 책임론을 둘러싸고 미·중이 충돌할 때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용 중국 때리기라는 인식이 강해 주요국들은 양비론적 입장을 견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홍콩 국가보안법 사태 후 대중 강경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홍콩 보안법을 통해 ‘홍콩의 중국화’를 강행하자 미국을 비롯해 영국과 독일, 호주 등 주요국들이 대중 관계의 전면 재조정에 돌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홍콩은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특별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됐다. 민감한 기술의 홍콩 수출도 금지된다. 영국은 화웨이의 5세대(G) 이동통신 네트워크 퇴출을 결정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국가안보회의 후 통신 인프라의 안보적 측면을 고려해 그런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엔 경제성과 대중 관계를 고려해 화웨이를 채택한다고 밝혔는데, 6개월 만에 180도 바뀐 것이다. 홍콩 사태가 영국인의 대중 환상을 박살 낸 셈이다. 독일 정계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유화적 대중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시 주석의 라이프치히 방문 반대론이 일고 있다. 시 주석은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인 독일을 방문해 EU와 정상회담을 할 예정인데 가든 못 가든 체면을 구기게 됐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올해 11월로 예정된 시 주석의 국빈방문 추진 중단 요구 결의문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전달했다.

미국 등 주요국들이 중국에 등을 돌리는 것은 홍콩 보안법 강행을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보기 때문이다. 묵인할 경우엔 무법적 행태가 반복될 것이 뻔한 만큼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영국과 독일,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 유엔 27개 회원국이 홍콩 보안법 폐지 촉구 성명을 낸 것이나, 미 국무부가 13일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시 주석이, 1997년 홍콩 반환 후 50년간 1국양제(一國兩制) 및 고도 자치를 유지한다는 중·영 공동성명을 뭉개고 홍콩의 내국화(內國化)를 27년 앞당겼는데, 중국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언제든 국제 합의도 깬다는 신호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크림 반도를 점령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행보와 닮았다는 점에서 홍콩은 ‘시진핑의 크림 반도’다.

홍콩 사태의 유일한 긍정적 측면은 시 주석이 나서서 한국 진보진영의 1국 2체제 환상을 깨준 점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결과물인 6·15 공동선언 2항의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따른 통일 지향’은 1국 2체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사실상 북한의 구상이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이제 무의미해졌다. 문제는 시 주석의 강압 외교 본색이다. 홍콩식 해법을 한반도로 확장하려 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북한 급변 사태가 발생할 경우, 시 주석은 한반도 안정을 내세워 북한을 홍콩식으로 ‘내국화’하거나 동북 3성에 편입시키는 ‘변방화’ 조치를 강행할 수도 있다. 이미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고 강변했던 전례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과의 공조를 통해 대북 문제를 풀겠다는 계산으로 계속 머리를 숙인다면, 시 주석은 북한에 이어 한국까지 넘볼 수도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 출석해 홍콩 보안법 폐지 촉구 27개국 성명에 불참한 것과 관련해 “제반 사항을 고려했다”고 이유를 댔다. 제반 사항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지만, 시 주석 방한 추진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문 정부의 홍콩 사태 묵인은 한국의 위상을 추락시킨 외교 패착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중국 영향권에 편입된 외교적 무뇌(無腦)국’ 취급을 해도 할 말이 없는 형국이다.

중국의 일방적 대국주의엔 자유·민주·법치에 기반한 국제 연대 외교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이 침묵할수록 중국은 더 고압적으로 나올 것이다. 문 대통령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원한다면 더 이상 북한에만 정신을 팔지 말고 대중 정책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중국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국가 안보가 홍콩 사태 및 화웨이 등에 대한 판단의 최우선 기준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 주석 말 한마디에 국가 운명이 흔들리는 나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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