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고생만 하다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간 큰형이 그립다. 형은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이 뭘 잘못하든 단 한 번도 감정적으로 혼을 내지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을 때 꼭 왜 맞아야 하는지부터 알게 하고 매를 들었던 형. 동생들 뒷바라지하느라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돈을 버는 대로 어머님께 드리고, 동생들 옷 사주고, 형은 정말 열심히만 살았다.
재작년 2월 초 갑자기 형이 전화해서 목포에 있는 한 작은 병원에서 화순에 있는 전남대병원에 가보랬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마침 쉬는 날이라 다음 날 내가 차를 운전하면서 갔다. 가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목포 병원에선 간암 같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충격에 빠졌지만, 난 희망을 가졌다. 그때 형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내 간이라도 떼어 주겠다고 했다. 형이 살 수만 있다면 형 대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했다.
화순전남대병원 의사가 목포 병원에서 가져온 사진 등을 보고 자세한 건 다음 주에 입원해서 검사하자고 하면서 간암 말기인 거 같다고 했다. 요즘은 의술이 좋아서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다음 주 전남대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의사가 내게 먼저 말해줬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희망이 무너져 버렸다. 췌장암인데 간까지 전이됐다고 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고 깜깜해졌다.
내 맘을 누가 알까. 그때 심정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내가 형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췌장암에 뭐가 좋은지 매일 검색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퇴원 날짜는 다가오고 의사는 환자 본인도 췌장암이란 걸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아직 젊으니 항암치료를 받으면 1년 넘게 살 수도 있다고 했다. 내 맘은 공기 좋은 데 가서 요양하면 더 오래 살지 않을까 하고 항암치료를 받지 말라고 하고 싶었는데, 끝내 형은 항암치료를 받았다.
본인은 항암치료를 세 번째 받으러 갔을 때만 해도 간암인 줄 알았다. 당시 췌장암이라고 말해주지 못해 후회된다. 형은 간암인 줄 알고 살려고 항암치료를 받은 건데 세 번째 항암치료 받으러 가서 췌장암인 걸 알아버렸다. 순간 형은 넋이 나간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담담해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삶의 희망을 놓아버린 모습이란 걸 그땐 왜 눈치 못 챘을까.
그렇게 삶의 의지를 놔버린 형은 두 달도 안 돼 가버렸다. 나는 지금도 항암치료 말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한방치료든 뭐든 해보자고 하지 못한 게 너무 가슴 아프다. 마음 여린 사람이라 말하지 말자고 했던 형수 말을 따르지 말았어야 했다.
형이 그렇게 간 후 조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첫 소풍을 간다고 해서 형을 대신해 따라갔다. 유독 조카가 날 많이 따르고 좋아하는 건 형과 너무 닮아서라고 주변 사람들이 그랬다. 형 대신 다은이가 잘 클 때까지 도와주고 아빠 사랑이 그립지 않게 해주고 싶은데 현실은 정말 힘들다.
“내 형이지만 정말 존경하고 사랑했어. 왜 좋은 사람은 이렇게 빨리 가는지 원망스럽다. 그리워 형, 따라가고 싶은데 아직 그런 용기가 생기질 않네. 형 거기서 잘 지내고 있지? 거기선 힘들게 일만 하지 말고 편하게 살길 바라. 행복하거나 힘들 때면 형의 빈자리가 더 커 보이고 많이 그립다.”
동생 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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