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4월 7일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 더불어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낼지를 두고 당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서울과 부산은 민주당 출신 광역단체장의 성추문으로 인해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지역이다.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른 이재명 경기지사를 비롯한 당내 일각에서는 무(無)공천을 주장한다. 이 지사는 지난 20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 쪽의 중대한 비리 혐의로 이렇게 될 경우에는 공천하지 않겠다고 써놓지 않았느냐”며 “정말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면 김두관 의원은 같은 날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그런 식이라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통합당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선거를 약 1년 앞두고 열리는 4·7 재·보선의 중요성을 감안해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아직은 당내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당은 선거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다는 점에서 후보 공천 문제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는 건 일견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순서가 잘못됐다. 민주당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사건을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는 권력형 성폭력부터 막았어야 했다. 재발을 방지하겠다며 ‘젠더폭력태스크포스(TF)’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 ‘젠더폭력근절TF’를 꾸렸지만, 결과적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도 실패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석 달도 되지 않아 발생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민주당의 행태는 ‘동지’와 ‘당’ 지키기에 집중됐다. 지난 10일 박 전 시장 빈소를 조문하고 나온 이해찬 대표가 ‘고인의 의혹에 당 차원 대응을 할 것인가’를 묻는 기자에게 “××자식”이라고 욕설한 게 대표적이다.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도 나왔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윤준병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고인은 죽음으로 당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 “시장실 구조를 아는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해 왔던 민주당이었지만 박 전 시장 사건에서는 ‘민주당 중심주의’만 확인됐다. ‘피해 호소인’이라는 단어는 민주당의 속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성추행을 인정하고 시장직을 사임한 오 전 시장 사건과는 달리 박 전 시장 의혹은 사실관계가 규명된 것이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후보 공천 논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특히 부산과 서울은 상황이 다르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은 여전히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은 사실이 아니라 일방의 주장이라고 깎아내리고 있다. 잘못한 게 없으니, 당헌에 따라 후보를 추천하면 안 된다는 사고는 할 수조차 없다. 논쟁이 과열되자 이해찬 대표는 21일 고위전략회의에서 “지금 얘기하면 계속 얻어맞기만 한다. 연말쯤 후보를 낼지 말지 결정하면 된다”고 피해갔지만, 무공천이 당헌에 맞는다. 공당(公黨)으로서 진상 규명에 앞장서 피해자 권리 회복 및 구제를 돕고 자당 출신 광역단체장의 잘못을 책임지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유권자의 판단을 받기 위한 자격부터 갖추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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