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정치권의 시간’입니다. 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른 지 불과 3개월 만입니다. 부동산 정책 논란 속에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이 주요 기사로 다뤄지고, 분위기 쇄신을 위한 청와대 참모 개편설이 이어집니다. 21대 국회는 늑장 개원 기록을 갈아치우는 등 시작부터 싸움판입니다. 급기야 행정수도 이전론이 10여 년 만에 다시 논쟁거리로 떠올랐습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논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충돌 등을 놓고는 시민들끼리 충돌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주장과 약속이 난무하는 이 시기에,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출간한 책 ‘상징입법’(한울아카데미)은 ‘주권자로서 국민’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상징입법이란 “겉과 속이 다른 법, 또는 그런 법을 만드는 것”, 다시 말해 “겉만 번지르르한 법을 만들어 대중을 현혹하거나 우롱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가장 흔한 경우는 ‘안심조장형’ 또는 ‘민심무마용’ 상징입법으로, 정부 또는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이 사태를 잘 장악하고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입법입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거나 정권이 교체됐을 때, 부패 스캔들이 터졌을 때, 중대한 국가 정책을 바꿀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납니다. 정부의 정책 대안 급조, 정치권의 현장 방문과 법안 발의 남발 등은 이들이 사태 수습을 위해 헌신하고 있음을 ‘실감 나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들입니다.

저자는 이런 상징입법이나 상징정치를 ‘그들만의 입법 연희(演戱)’라고 일갈합니다.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사태, 아동·청소년 성착취 사건, 미세먼지 대란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에 정부와 정치권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들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들이 만든 정책과 법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입니다. 여기에는 왜 정치권과 정부는 자신들이 만든 법 조항을 자랑하기만 할 뿐 입법의 부작용과 결함에는 책임지지 않는지에 대한 분노가 담겼습니다. 상징정치·상징입법이 아닌 책임정치·책임입법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정치권의 시간’은 동시에 ‘주권자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입법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분명히 하자는 저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일 때입니다. “상징입법은 문제 많은 나라, 대한민국에 유독 많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은 추악할 수도 있는 입법과정을 눈을 부릅뜨고 들여다봐야 하고, 상징입법의 폐해가 커지지 않도록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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