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 손기정은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 우승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시내 어디를 가도 낯선 외국인들이 몰려와 사인을 요청했다. 눈앞에서 마라톤 영웅을 마주한 사람들은 그를 ‘Kitei Son(기테이 손)’이라 부르며 환호했다. ‘Kitei Son’은 일본인으로 올림픽에 출전한 손기정의 공식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망설임 없이 사인 종이에 자신의 한글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 이름 아래 ‘KOREAN’이라는 정체성의 뿌리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어야 했던 손기정이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저자가 어렵게 구한 손기정의 사인은 마라톤 결승전 후 사흘이 지난 8월 12일 어느 현지인이 받은 것이다. 세월이 흘러 누렇게 변한 이 종이의 크기는 고작 가로 10㎝, 세로 3.5㎝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 작은 종잇조각에서 식민지 시기를 살았던 고개 숙인 챔피언의 비애를 마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6·25전쟁 당시 이름 모를 아홉 명의 청년이 무표정한 얼굴로 찍은 사진도 눈물이 찔끔 솟을 만큼 슬프고 아련하다. 경매 사이트에서 구입한 이 사진에는 ‘10년 후에 다시 만날 동무’라는 글귀와 함께 ‘1951. 1. 5’라고 날짜가 적혀 있다. 하루 전인 1월 4일은 중국군의 개입으로 계속 밀리던 한국군과 유엔군이 다시 서울을 빼앗긴 날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긴급한 상황에서 청년들은 기념사진을 찍었을까. 모르긴 해도 저자는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가게 된 이들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도 평화로운 세상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남긴 사진일 것’이라 추측한다.
이 밖에 갑자기 콜레라가 창궐한 해방 직후 어느 학생에게 발급된 ‘휴교 증명서’, 1950년대 ‘대통령의 생일을 왜 학교에서 기념하느냐’며 잔뜩 불만을 표한 중학생의 일기도 독자의 눈길을 잡아채기에 충분하다. 이름난 영웅과 보통의 갑남을녀가 교차하는 사진 속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우리가 지나온 다사다난한 역사가 어렴풋이 그려진다. 292쪽, 1만8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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