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계약론의 사상적 기초를 닦은 토머스 홉스는 1620년대 후반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영어로 번역했다.
당시는 절대왕정을 강화하려는 찰스 1세와 입헌군주제를 관철하려는 의회파의 충돌로 정치적 긴장이 한껏 고조된 시기였다. 마흔 살 언저리의 젊은 학자였던 홉스가 이 책에 주목한 이유는 왕정을 옹호하는 투키디데스의 사상이 자신의 입맛에 꼭 맞았기 때문이다. 투키디데스처럼 홉스도 ‘말’과 ‘생각’이 넘쳐나는 민주주의는 나라의 안정을 해치는 제도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홉스는 ‘번역’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찰스 1세를 꼭짓점으로 하는 왕당파의 편에 서고자 했던 셈이다.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미국 텍사스대 교수가 쓴 이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본격적인 홉스 전기다. 불세출의 고전인 ‘리바이어던’의 탄생 배경을 뼈대로 삼고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홉스의 개인사를 시간순으로 훑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번역으로 몸을 푼 홉스는 10년여가 흐른 1640년 ‘법의 원리’를 출간했다. 남의 생각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의 입으로 군주정에 대한 강한 신념을 설파한 이 책 덕분에 홉스는 정치 이론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당시 왕정의 약화로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가던 의회주의자들은 홉스를 눈엣가시로 여기기 시작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 결국 프랑스로 망명을 떠난 홉스는 11년 뒤에나 영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리바이어던’은 기나긴 망명 시절을 마감하기 직전인 1651년 세상에 공개됐다. 홉스 철학의 정수가 집대성된 이 대작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1649년 청교도 혁명에 따른 찰스 1세의 처형이었다. 냉혹한 권력 싸움을 지켜보며 홉스는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선(善)이 아닌 악(惡)이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깨달음은 인민이 자신의 권리를 국가 지도자에게 양도하는 계약을 맺고, 지도자는 계약에 따라 승인된 권력을 행사할 때 비로소 국가를 안정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서술의 핵심 줄기는 홉스가 사회계약론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지만, 630쪽이 넘는 이 전기를 보다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자잘한 흠결들이다. 자신처럼 당대 유럽의 최고 지성이었던 르네 데카르트와 무려 7년 동안 신(神)의 존재 증명을 놓고 설전을 주고받은 이야기는 특히 재밌다. 홉스는 신에 대한 관념이 없어도 신을 믿을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데카르트는 인간은 본래 신에 대한 관념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했다.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한 두 사람은 서로를 “논리적 증명이 뭔지 모르는 사람” “당신이 공부를 더 해야 할 이유”라고 깎아내렸다. 저자는 이 논쟁이 사실은 심도 있는 철학적 쟁점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고 꼬집는다. 그저 ‘때로는 오만하고 건방진’ 인간이었던 홉스가 질투심에 휩싸여 ‘영광을 독차지하기 위한 제로섬게임’을 벌였다는 것이다. ‘홉스’는 이렇게 본류와 지류를 섬세히 엮으며 한 위대한 정치철학자에 대한 거대한 벽화를 완성한다. 632쪽, 2만9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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