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 워싱턴 특파원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 준비로 나름 바빴던 시기였으니 아마 1995년 4월이나 5월 즈음으로 기억된다. 머리를 식힐 겸 극장에서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한 ‘아웃 브레이크’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에서 전염병 숙주인 원숭이 한 마리가 이리저리 옮겨지는 통에 치명률 100%인 전염병이 번져 미국 등 곳곳에 전염병 환자가 발생한다. 주인공인 더스틴 호프먼은 태극호라는 한국 선박에서 찾은 사진을 통해 원숭이가 숙주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원숭이를 포획해 백신을 만들어낸다. 25년 전 영화가 다시 생각난 건 전염병에 대처하는 영화 속 미국과 현실 속 미국의 격차가 너무나 커서였다. 이와 같이 영화와 현실 간 차이를 인정한다고 해도 현재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은 세계 초강대국이라는 별칭은커녕 국가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도 의문을 갖게 만들고 있다.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450만 명에 육박한다. 재확산에도 초기보다 안정 기미를 보이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미국은 연일 최고 확진자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의 가장 큰 책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발병 초기에 공개적으로 독감보다 못한 질병 수준으로 치부했다. 또 상황이 조금 나아지자 억제조치를 풀고 경제 재개에 속도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 행보에는 코로나19를 재선에 활용하기 위해 정치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정치는 이견과 갈등을 조정하고, 국가를 운용하는 활동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방안을 강구하고 지원책을 마련하는 일은 정치의 영역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득실에 따라 논쟁거리로 삼는 데만 몰두했다. 모든 사안을 진영논리로 정치화하는 일은 트럼프 대통령의 특기다.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불거진 인종차별 문제도 표 득실을 따져 정치화했다. 흑백 갈등을 해결하기보다 백인 표를 얻으려 인종차별 문제를 정치화하면서 미국에서는 시위가 그치지 않고 있다. 경찰 개혁도 시위대의 예산 삭감 요구를 이용해 정치화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현재 미국의 모습은 정치인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력을 발휘하기보다 문제를 정치화할 때 국론 분열과 혼란 등이 벌어진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런 미국 모습은 최근 한국 모습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청와대나 더불어민주당이 모든 문제를 진영논리에 따라 정치화하는 행보가 미국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은 탓이다. 부동산 문제를 경제 문제가 아니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문제로 정치화하면서 정책은 산으로 가고 혼란만 더하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감싸기로 성추행 사건을 정치화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사실상 부추겼다. 북한 주민과 탈북자에게는 다른 기준을 들이대는 등 자칭 민주화 세력이라면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민주주의와 인권마저도 정치화했다. 그나마 미국 정치권은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선을 넘어가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트럼프 측근들은 물론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등 정부 고위관료들도 반대 목소리를 낸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처럼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대하다 물러난 이들도 있다. 자기 진영 사람은 무조건 싸고도는 청와대나 여당 인사들에게 이런 최소한의 양식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김석

김석 기자

문화일보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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