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크레딧 / 김주희 지음 / 현실문화

“텐프로 아가씨는 기가 막히지만 가격이 ‘후덜덜’ 하지요. 그래서 만든 게 저희 역삼동 ‘매직 미러 초이스’입니다. 주대는 낮추고 수질은 확 올렸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 영업팀장이 포털 사이트에 올린 홍보 게시물이다. 다소 가볍고 경박하지만, 이 문구들은 유흥업계의 본질을 정확히 함축하고 있다. ‘수질’이라는 표현을 보라.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여성의 몸을 황당한 비유로 대상화하는 뻔뻔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매직 미러’와 ‘주대’ 운운하는 대목에선 저렴한 신상품으로 정글 같은 ‘매춘 생태계’에서 살아남겠다는 결연한 전략마저 읽힌다.

여성 정치경제학자 김주희 연구자가 쓴 이 책 ‘레이디 크레딧’은 성매매특별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전히 사회 한쪽 구석에서 화려하게 기생하고 있는 유흥업계에 대한 실태 보고서다. 성매매 종사 여성 15인과 업소 관리자, 사채업자를 두루 인터뷰해 완성한 학술 논문을 단행본으로 엮었다.

저자는 성매매 업종의 기형적인 진화 과정을 금융산업의 맥락 안에서 분석한다. 지난 2004년부터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전국 각지의 집창촌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텐프로, 신종 안마 시술소, 풀살롱 등 온갖 해괴한 형태의 유사 업종이 단속망을 피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초중반 이후에는 룸살롱들이 대형화·기업화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때 성매매 업소들이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일조한 것이 제2금융권의 대출상품이었다.

당시 경영위기에 내몰린 금융사들은 재무 개선을 위한 활로 마련 차원에서 유흥업소 경영자와 여성 접대부를 겨냥한 특화 대출상품을 출시했다. 거액을 빌려줘도 도심 노른자 땅에 자리한 업소들이 ‘공장식 윤락행위’를 통해 금세 원리금을 상환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 아래 J저축은행·U신용협동조합·K저축은행은 2000년대 초중반 2300억 원이 넘는 대출금을 뿌렸다.

금융 자본주의가 낳은 ‘부채 피라미드’의 밑단에는 물론 여성 종사자가 있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단기간에 목돈을 벌겠다는 목표 하나로 성매매 업계에 흘러들어온 이들은 이중·삼중의 채무 고리에 얽매여 있다. 저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보통 성 접대부들은 포주로부터 ‘선불금’을 받고 업소에 취직한다. 한 달에 적게는 수백만 원, 많게는 10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이들이 금방 빚을 갚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업소들이 접대부에게 끊임없이 ‘더 예쁜 아가씨로 거듭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성매매 종사자들은 일하러 가는 날이면 반드시 강남의 최고급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손질해야 한다. 눈썹 붙이고 화장하는 데도 돈이 든다. 무엇보다 꾸준한 다이어트와 주기적인 성형 수술은 필수다. 밤마다 술을 따르고 마시지만 어떻게든 마른 몸을 유지하고, 심지어는 사슴처럼 긴 목을 만들기 위해 근육을 잘라내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재여성화 전략’이라고 부른다. 책 제목처럼 자신의 몸을 담보로 내민 ‘레이디 크레딧(신용 부인)’들은 오늘보다 내일 더 예뻐지기 위해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고 사채업자한테 돈을 빌린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의문이 솟을 법도 하지만, 성매매가 펼쳐지는 과정을 보면 금세 수긍이 간다. 업소에서 접대부가 손님을 맞는 첫 관문은 ‘초이스’의 순간이다. 손님들은 일렬로 나란히 선 여성들을 위아래로 훑어본 다음 ‘취향’에 맞는 파트너를 골라 옆자리에 앉힌다. ‘외모 경쟁력’이 떨어지면 1분 안에 모든 게 판가름나는 초이스 단계에서 번번이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저자가 만난 한 여성이 솔직하게 토로한 대로 ‘손님과 연애하는 건 아니지만, 선택을 계속 못 받으면 수입이 줄어들 뿐 아니라 깊은 우울감에 빠져든다’.

성매매 여성들은 이처럼 모욕적인 상황을 감내하면서 돈을 벌고, 빚을 갚고, 또 기껏 모은 돈을 탕진하는 삶을 반복하지만 쉽게 업계 바닥을 떠나지는 못한다. 학력이라는 특출난 상징 자본을 갖지 못한 탓에 ‘백화점에서 온종일 억지 미소를 짓거나 공장에서 15시간씩 죽어라 일하는 것’보다는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체념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미덕이 많은 책이다. 우선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지 않고 열심히 발품을 판 흔적이 역력하다. 업소 유형별로 접대부들이 어떤 방식으로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는지, 또 포주 앞에서는 왜 늘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는지 생생한 문체로 서술한다. 어두운 뒷골목의 유흥가를 배경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감독이 있다면 이 책부터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어쭙잖은 해결책 대신 기막힌 실태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태도도 오히려 믿음이 간다. 저자는 성매매 근절 방안을 후속 연구와 정책당국의 몫으로 남겨놓은 채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는 성 착취의 현장을 폭로하고 고발한다. 완전하진 않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 요술 방망이 같은 해법이 뚝딱 나오진 않아도, 외면하고 싶은 사회의 음습한 그늘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다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첫 단추를 이미 끼운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432쪽, 2만2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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