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김연아 기자
일러스트 = 김연아 기자

■ 북리뷰팀이 권한다… ‘코로나 블루’ 떨치는 책 10권

- 추리소설
‘사라진 밤 ’에 일어난 ‘완벽한 배신’은
절망 속으로 ‘나를 데려가’줬지

- 에세이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한 잔 마시고
‘음식의 위로’에 마음 달래며‘경원선 따라 산문 여행’ 해본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을 할거야

- 인문·자연과학
‘저기 어딘가 블랙홀’이 있을것 같아
‘신과 로봇’을 친구 삼아 神界를 다녀와보니
‘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군


‘감염증 시대’는 휴가철 풍경도 바꿔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해외로 가는 여행길은 막혔고, 국내 여행지에서도 방역수칙이 최우선시된다. 2020년 여름 휴가철의 우울한 초상이다. 그래도 휴가는 휴가다. 우울감이 만연한 시기엔 잠시 멈춰 서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 더욱이 책과 함께 떠난다면 몸이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문화일보 북리뷰팀이 ‘코로나 블루’를 떨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10권의 책을 소개한다.


◇숨 막히는 긴장 선사하는 추리소설 = 제목만 봐도 서늘한 스릴러 3편을 추천한다. 등골이 오싹하고 무더위가 날아간다는 거짓말은 못하겠다. 읽는 내내 긴장감에 진땀을 흘릴 테니. 그러나 이 숨 막히고 위험하고, 치명적인 ‘다른 세계’는 잠시나마 진짜 세상의 시름을 잊는 데엔 제격이다. 지금 발 딛고 있는 현실이, 사실은 얼마나 평온한 건지도 깨닫게 해주며.

‘사라진 밤’은 15년 전 기차 사고로 쌍둥이 동생을 잃고, 같은 날 여자친구마저 행방불명된 비극을 안고 사는 형사 냅이 주인공이다. 어느 날 냅은 여자친구의 지문이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으며, 다시 그날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세계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을 최초로 석권한 할러 코벤의 신작으로, 넷플릭스에서 영상으로 제작된다고 한다.

‘완벽한 배신’은 영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심리 스릴러로, 한 여성의 슬픔과 상실감을 전면에 내세워 인간관계의 어두운 면들을 파헤친다. 사고로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살아가는 주인공 테스가, 매일 상상 속에서 죽은 남편과 대화를 이어가는 등 독특한 설정이 눈길을 끈다. 심리 서스펜스 문단의 신성 로렌 노스의 첫 장편으로, 여성-모성 캐릭터를 새롭게 부각시켜, 이야기는 탄탄한 ‘여성 소설’로 확장된다.

‘나를 데려가’는 뱀파이어 로맨스 ‘렛미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스웨덴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작품으로, 이번에는 광활한 바다를 소재로 삼았다. 어린 딸이 실종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스칸디나비아반도의 겨울 풍광과 대자연에 대한 오랜 공포심을 효과적으로 담아냈다.

◇‘유명 작가와의 여행’ 이끄는 에세이 =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은 위스키의 향기를 찾아 떠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여행 에세이다. 일본보다 해외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을 만큼 여행을 사랑하는 하루키의 이번 목적지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다. 하루키는 위스키를 세계 최초로 양조한 그곳으로 날아가 동네 레스토랑을 순례하며 술의 맛과 향을 음미한다. 생굴 한 접시와 위스키를 함께 맛본 하루키가 ‘인생이란 이토록 단순한 것이며, 이다지도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라고 소박한 행복을 노래하는 순간, 누구라도 입맛을 다시며 부엌 언저리를 쳐다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가 쓴 ‘음식의 위로’는 제목에 책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알코올 의존증에 빠진 저자는 어느 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정신을 번쩍 차린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먹었던 음식을 만들고 자신만의 레시피를 정성껏 정리한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요리를 맛볼 때마다 깊이 팬 상처에는 거짓말처럼 새살이 돋는다. 다른 나라, 다른 도시로 떠나는 관광 에세이는 아니지만 ‘다친 마음을 치유할 레시피 여행’이라는 부제는 충분히 그럴듯하다.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에는 여행 못지않게 지친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마법 같은 힘이 있으니 말이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소설가 김영하의 시칠리아 기행문이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전업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김영하가 낯선 곳에서 예감한 새 인생에 대한 설렘과 두려움이 담겨 있다. 무릇 좋은 여행기는 멋들어진 사진과 알찬 정보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뛰어난 기행문은 언제나 삶과 사람의 이야기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시칠리아의 풍광도 좋지만, ‘어느새 은행의 자동이체 공과금을 생각하는’ 사람이 된 작가가 ‘내 안의 어린 예술가’를 찾아 떠난 모험담에 눈길이 더 쏠리는 것은, 이 책이 엄지를 치켜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여행기이기 때문이다. 수년 전 절판됐으나 독자들의 관심에 따라 새로운 편집으로 올해 4월 재출간됐다.

‘경원선 따라 산문 여행’은 한반도 분단과 함께 단절된 철도의 옛 기억을 되짚는 선집(選集)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엮은 이 책의 목차는 1941년 당시 경원선 위에 놓인 기차역 순서를 그대로 따른다. 첫 장은 경원선의 출발점인 경성역에 대한 수필들을, 마지막 장은 종점인 원산역과 관련한 글들을 소개하고 있다는 뜻이다. 각 장에 사진은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한 기사도 수록했다. 염상섭·임화·채만식 등 근대문학사를 빛낸 작가의 고색창연한 문장을 만나볼 수 있다. 참신한 기획력 때문에 집어 들었다가 종국에는 편저자의 섬세한 감식안에 탄복하게 되는 책이다.

◇인문·자연과학과 함께하는 색다른 여행 = 과학 에세이를 표방한 ‘저기 어딘가 블랙홀’도 휴가철에 한번 펼쳐볼 만하다. ‘글은 발로 쓴 것’이라 믿는 저자가 칠레 해변에서 본 개기일식, 하와이에서 마주한 무지개 등을 소재로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낸다. 따뜻한 문체와 냉철한 과학 지식은 충돌하지 않고 서로 스며들면서 독특한 독서 체험을 안겨준다. ‘빛을 삼키는 블랙홀이라 할지라도 이 우주에 숨어 혼자이고 싶은 존재는 없다’는 문장에 밑줄을 좍 긋고 나면, 지금 당장 사랑하는 사람과 길을 나서고 싶어진다.

‘집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는 여러 사정 때문에 여름휴가 기간에도 집에 머물러야 하는 이들에게 색다른 탐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생물학자의 ‘집 안 생물 탐사기’랄 수 있는 이 책은 사람들이 무시했을 뿐 집 안에도 어마어마한 생태계가 존재해 왔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최소 20만 종의 집 안 생물이 발견됐다. 척추동물과 절지동물, 곤충, 식물 등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진균, 세균, 바이러스 등도 인간의 눈을 피해 어엿한 집의 주인으로 살아왔다. 특히 각종 미생물이 발효 등을 통해 인간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확인하면, 집 안 생물이 더 이상 징그럽고 불결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신과 로봇’은 독자들을 그야말로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방식의 그리스 신화 읽기 여행으로 안내한다. 로봇, 안드로이드(인조인간), 인공지능(AI), 오토마타(저절로 움직이는 장치), 사이보그(인간·기계 혼합체) 등 신화 속에 감춰진 과학소설(SF)의 요소를 찾아내는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AI를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마치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예정된 미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이른다. 안드로이드를 연상케 하는 탈로스, 영원 불사를 추구하는 티토노스 등의 이야기는 과학기술의 놀라운 진화가 아주 오래된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북리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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