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습실의 플라시도 도밍고
발성연습 자리서 우연히 만나
노래하는 나의 자세 고쳐주니
미세한 티칭에도 변화 느껴
독일 뮌헨 국립오페라단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일이다. 어느 한가한 오전, 출연자 대기실에서 느긋하게 연습을 하다 잠시 바람을 쐬고 돌아왔는데, 웬 테너가 발성 연습을 하고 있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순간 멈칫했다. 어디선가 많이 듣던 목소리! ‘오페라의 황제’ 플라시도 도밍고였다. 며칠 뒤 공연할 바그너의 오페라 ‘발퀴레’ 갈라 콘서트의 리허설을 위해 도밍고가 극장을 방문한 것이다.
마에스트로의 신성한 연습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문밖으로 새어 나오는 환상적인 음색에 귀를 뗄 수 없었다. 이런 대가의 개인적인 연습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무한한 영광일뿐더러 혹시 그만의 발성 비기를 엿볼 수 있을지 모르는 절호의 기회였다. 대가의 목 풀기는 단순하게 시작됐다. 겨우 다섯 음만을 이용한 ‘도레미파솔파미레도’를 반복해서 흥얼거렸다. 시간이 지나도 템포에 조금씩 변화를 준다거나 입이나 턱을 조절해 부드럽게 볼륨을 맞출 뿐 도밍고의 워밍업에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코앞에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그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선뜻 악수를 청했다. “구텐 탁(Guten tag)! 난 플라시도네. 나에게 무슨 용건이 있어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나는 먼저 정중하게 사과하고 극장에 새로 들어온 바리톤이라고 인사를 했다.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의 훌륭한 극장에서 노래하게 된 걸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마에스트로! 실례가 안 된다면 당신 앞에서 노래를 불러보고 싶습니다.” 나의 호기 어린 부탁에 그는 미소로 수락했고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다시 한 번 불러보겠나? 이번엔 내가 노래 중간에 좀 끊어도 괜찮겠지? 시작해 보게.”
내가 노래하는 동안 그는 ‘오페라 황제의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고, 중간에 두어 번 정도 손가락 끝으로 내 턱을 살짝 누르거나 어깨의 자세를 미세하게 교정해 줬다. 특별할 것 없는 티칭이었다. 하지만 도밍고와의 짧았던 교감 이후 작은 변화가 느껴졌다. 평소에 어려워하던 부분이 술술 나오는 게 아닌가. 노래하는 중간에 손가락으로 내 턱과 명치를 두어 번 꾹 눌렀을 뿐인데 발성은 더 자유로워졌고 그의 눈빛에 이끌려 나는 이전엔 느껴보지 못한 감정선을 따라 노래를 하고 있었다. 두 곡의 아리아를 끝까지 불렀을 때 도밍고는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알고 있는 발성의 비밀을 하나 알려 주겠네.” 그러고는 나의 코 주변에 동그란 원을 그려 보였다. “여기서 너무 멀리 산책 나가지 말게. ‘포커싱’ 그게 전부네.”

안우성 클래식 월담 대표
오늘의 추천곡 :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테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높은 음역의 레지에로(leggiero)부터 가장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리릭(lyric) 그리고 폭발적인 성량의 드라마틱(dramatic) 테너가 있다. 리릭과 드라마틱 테너 사이에 테너를 리릭 스핀토(spinto)라고 한다.
도밍고의 가장 큰 매력은 비음 섞인 감미로운 목소리와 비강을 활용한 파워풀한 고음이기에 리릭 스핀토를 요구하는 배역의 오페라가 가장 잘 어울린다.
오페라 ‘토스카’의 카바라도시(Cavaradossi·테너)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le)’은 그의 가장 대표적인 레퍼토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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