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남태평양 섬나라인 뉴질랜드는 작지만 강한 나라다. 2개의 섬을 중심으로 이뤄진 뉴질랜드의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1.2배, 인구는 500만 명 남짓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4만2000달러로 3만 달러 수준인 한국보다 잘 산다. 제인 캠피언 감독의 영화 ‘피아노’와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 더 유명해지면서 풍광을 즐기려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관광대국이기도 하다. 뉴질랜드인은 원칙과 신뢰를 무엇보다 중시한다고 한다. 뉴질랜드가 전세계적으로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율이 가장 낮은 나라로 분류되는 것은 이 같은 국민성의 한 단면으로 보인다.

뉴질랜드는 비핵 국가다. 프랑스가 남태평양에서 핵실험을 한 뒤부터 남태평양 비핵지대조약을 밀어붙이며 비핵 원칙을 고수해왔다. 미국과의 우호 관계에도 불구하고 1985년 미국의 핵군함 기항을 불허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뉴질랜드에 대해 “핵무기를 싫어하며 비핵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북한과 정반대인 나라”라고 평한 바 있다. 뉴질랜드는 6·25전쟁 때 6000명을 파병하며 한국과 첫 인연을 맺었고 1962년 수교 후 우방국이 됐다. 이후 주요 20개국(G20) 회의 회원국으로서 국제무대에서 협력을 강화해왔는데 웬일인지 최근 들어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18년 12월 뉴질랜드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했을 때 저신다 아던 총리는 “완전한 북핵 폐기(CVID) 때까지 대북 제재가 지속돼야 한다”고 했다. 비핵화 관철을 위한 제재론을 편 것이다. 이번엔 한국 외교관 성추행 의혹 사건이 불거졌다. 2017년 12월 발생해 2년여 끌다가 최근 양국 정상 통화 의제로 급부상했다. 뉴질랜드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이 압박하자 외교부는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국빈방문 때 대북 제재 엇박자나 외교관 성추행 의혹 논란은 외교부가 청와대 눈치만 보면서 뉴질랜드 측과 협의를 게을리한 탓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외교의 기본인데 문 정부는 뉴질랜드의 반핵 철학과 국민성을 간과한 채 변방 섬나라쯤으로 여기며 오만하게 굴다 국가 망신을 자초했다. 집권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의 성추행 의혹도 연일 외신을 타고 있어 한국이 ‘공직자 성인지 감수성 낙제국’ 오명을 덮어쓸까 걱정이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