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9, 12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옥선(86) 전 의원은 ‘남장(男裝)’ 여성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항상 양복에 화사한 꽃무늬 넥타이를 했다. 그러나 유신 시절 대정부 질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딕테이터(독재자) 박’으로, 유신정권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으로 맹공했다가 금배지를 박탈당한 ‘김옥선 파동’으로 더 유명하다. 어머니가 일제강점기에 징용됐다가 죽은 오빠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막내인 자신이 남장을 하게 됐다고 한다. 남존여비 풍토가 만연했던 당시에도 김 전 의원의 ‘남장’보다 의정활동이 더 관심을 끌었다.
그리스를 국가부도 사태로 몰고 갔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1964년 의원에 당선돼 등원할 때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나와 ‘의회 모독’이란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도 계속 그 차림으로 다니다 국민의 관심을 끌었고, 3차례 총리를 연임하는 동안 포퓰리즘 정책을 펼쳐 결국 부도 사태의 주범이 됐다. 미국 의회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해 의회에 연설하러 왔을 때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그의 여성관에 항의하는 뜻으로 흰색 의상을 입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이에 항의라도 하듯 반짝이를 단 검은색 옷을 입고 나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나라마다 의회라는 공간은 품격과 예절의 상징처럼 간주되면서 이런저런 옷과 관련된 얘기가 많다. 국회법 제25조에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지만 드레스코드 규정은 없다. TPO(Time, Place, Occasion) 즉, 시간·장소·상황에 맞는 옷차림이 강조되긴 하지만 생각은 각인각색이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으로 제21대 국회에 진출한 류호정(28) 의원의 복장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분홍색 계열의 원피스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것을 두고 극우 사이트와 친문 지지층 사이에서 모두 ‘오빠라고 불러봐라’ ‘노래당 도우미 같다’는 등의 비난이 나온다. 지난 2003년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국회의원으로 첫 등원을 하며 백바지, 노타이에 재킷을 입고 왔을 때도 “탁구 치러 왔느냐”는 등 비난에 시달렸다.
류 의원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게 진보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옷이 아니라 돋보이는 의정 활동과 실력으로 관습과 금기를 깨뜨려야 분홍 원피스도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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