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호 태풍 ‘장미’가 제주도에 근접한 1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표선읍 해안가에 강한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장미는 이날 오후 3시쯤 경남 남해안(통영 인근)에 상륙한 뒤 11일쯤 동해안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전망됐다. 연합뉴스
시장물건들 쓰레기처럼 쌓여 “건질 게 하나도 없다” 한숨 “홍수조절 실패가 피해 키워”
태풍 ‘장미’ 오후 남해안 상륙 “엎친 데 덮치나” 우려 커져
32년 만의 폭우를 뒤집어쓴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는 10일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은 상황이었다. 강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다가 잠잠해지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주민들은 복구 작업에 나서면서도, 제5호 태풍 ‘장미’로 인해 피해가 더 커지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이날 오전 여전히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화개장터 인근의 식당·약재상·잡화점 등 가게들은 내부가 온통 흙탕물로 범벅이 된 채 복구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굴착기와 화물트럭이 분주히 오가며 가게 앞마다 산처럼 쌓인 쓰레기들을 날랐고, 인근 도로엔 소독차가 구석구석 오가며 소독약을 살포했다. 화개장터 앞에서 프랜차이즈 편의점을 운영하는 강기민(58) 씨는 “하나도 건질 게 없다. 너무 허탈하다”고 말했다. 강 씨의 가게는 마치 간밤에 약탈이라도 당한 듯 선반들이 넘어져 있었고, 물에 떠내려가다 만 과자봉지와 통조림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화개장터가 물에 잠긴 것은 지난 1988년 이후 32년 만이다.
강 씨는 “섬진강 댐에서 물을 너무 많이 방류한 탓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며 “다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상인 정모 씨는 “(당국이) 홍수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또 합천댐 방류로 강물이 역류하면서 침수된 경남 합천군 쌍책면 건태마을은 물이 모두 빠졌지만 태풍 ‘장미’의 내습 우려로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쌍책면 힐링센터로 대피해 있다. 섬진강 지류 범람으로 전남 구례군 서시천에서도 제방 40m가량이 유실됐다.
이날 48일째 지속되는 장마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까지 몰려와 전국에 비상이 걸렸다. 기상청에 따르면, 태풍 ‘장미’는 제주 서귀포 남동쪽 약 210㎞ 해상에서 시속 38㎞ 속도로 북상해 10일 오후 3시쯤 경남 남해안(통영 인근)에 상륙했다.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서는 일부 남부지방에는 최대 250㎜ 이상의 비가 쏟아질 전망이다. 11일까지 예상 강수량은 남부지방과 제주도, 충청에 50∼150㎜, 서울·경기와 강원, 울릉도·독도는 30∼80㎜(강원 남부는 120㎜ 이상)다. 전남 남해안과 경남 해안, 제주도, 지리산 인근은 250㎜ 이상의 비가 내리는 곳도 있겠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번 태풍은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태풍 주변의 고온다습한 기류가 빠르게 올라오면서 경상도, 충북, 강원 영서 등에 매우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오전 10시 30분 기준)에 따르면 지난 1일 이후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는 31명, 실종자는 11명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