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국가 정상들은 여전히 ‘문과’ 출신이 대세지만, 이공계 출신 지도자도 적지 않다. 과학적 소양을 겸비한 데다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각광받으면서 늘어나는 추세지만, 이들 지도자의 성적표는 아직 반반이다.
대표적인 ‘이과’ 출신 국가 정상은 물리학 박사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2005년부터 장수 집권하고 있는 메르켈 총리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모범적인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유럽 경제회복기금 협상 타결을 이끌면서 메르켈 총리 특유의 포용적인 ‘무티(엄마)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는 호평이 나왔다. 대내적으로도 철저히 과학에 입각한 방역 정책으로 독일의 코로나19 치사율을 2% 미만으로 묶을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다른 성공 사례는 컴퓨터공학도 출신인 아비 아머드 알리 에티오피아 총리다. 20년간에 걸친 에리트레아와의 분쟁을 해결해 ‘협상의 귀재’로 통한다. 2018년 총리로 취임한 뒤 양국에서 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혈분쟁을 마무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적대국이었던 소말리아와의 관계를 개선했고, 접경국인 수단·남수단 분쟁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국내에서도 정치범과 구속된 언론인을 석방했고, 내각 절반을 여성으로 임명해 ‘성평등’ 정부를 실현했다.
하지만 모든 이공계 출신 지도자가 좋은 성적표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칭화(淸華)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같은 대학 수리공정(수력발전)학과를 졸업한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과 자주 비교당하고 있다. 후 전 주석은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충실히 이행하며 국제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 행정부와 경제·무역·북핵 문제로 협력했고, 대만과의 양안 관계도 좋게 유지해 대만 국민당의 당수 롄잔(連戰)이 2005년 대표단을 이끌고 처음으로 대륙을 방문했다. 홍콩인들이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던 때도 후 전 주석이 집권했던 시기다. 하지만 시 주석 취임 후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미·중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데다 홍콩은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폭발 직전이다. 국내적으로도 시 주석은 1인 장기집권 체제를 본격화하면서 ‘시황제’라는 별명까지 얻은 상태다.
20년째 집권 중인 알려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도 최악의 이과 출신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안과 의사였던 아사드 대통령은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에 이어 2대에 걸친 독재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민주화운동인 아랍의 봄이 발발하자 알아사드 정부는 시위대를 난폭하게 진압했다. 정권을 지키기 위해 국제사회가 금지한 화학무기를 자국민에게 사용하는 모습도 국제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됐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건축학과 졸업생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뇌물수수·배임·사기 등 비리 혐의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