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노래 사관(四觀), 60x90cm, 닥판에 먹과채색, 2006.
생명의 노래 사관(四觀), 60x90cm, 닥판에 먹과채색, 2006.


■ (42) ‘행복한 사진가’ 로베르 두아노

파리 근교 몽루주에 기거하며
수십년간 40만장의 사진 남겨

서민·소외층에 관심 많았지만
현실고발·분노 같은 것이 아닌
따스함·유머로 피사체 담아내

“파리는 흘러보내는 시간으로
좌석을 예약하는 극장과 같아
나는 그 극장서 기다리는 관객”


연인들은 키스한다. 길에서도 자동차 안에서도 바닷가에서도 심지어 붐비는 시청 앞에서도. 연인들은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상관없이 키스한다.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1912∼1994)는 그 짜릿하고 달콤한 ‘순간의 키스’를 정지시켜 목판화처럼 찍어냈다. 그리고 인생의 꽃같이 화사한 그 한순간의 정지된 장면을 장차 병들고 늙어 소멸돼가는 인생들에 한 장의 선물처럼 남겼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시간은 기억이라고 했고 또 다른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기억은 인화된 사진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덧없이 흘러가는 인생에서 사진만이 그 자취를 기억으로 인화해 남겨놓은 진정한 유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하다. 어쨌거나, 새처럼 공중을 날고 싶은 욕망이 비행기를 만들었다면 흘러가는 시간을 붙들어 매어 두고 싶은 욕망은 사진을 만들었지 싶다.

죽음의 열차에 앉아 있는 인생. 그 영광과 기쁨 그리고 슬픔마저도 멈춰 지니고 싶은 욕망이 사진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사진가는 한사코 시간이 고여 있는 장소와 사연이 있는 삶의 저잣거리로 나아간다. 파리는 그중에서도 시간과 예술과 사랑과 이별이 찰랑, 고여 있는 도시다. 그리고 그런 파리는 그 자체가 박물관이다.

그곳에서는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전시물이 된다. 행복한 사진가 두아노는 그 박물관의 전시물인 시간과 인생과 풍경의 기록자였다. 진실로 그 도시를 사랑한 장인(匠人)이었다. 평생에 걸쳐 마치 동사무소의 호적계원처럼 그는 도시의 시간과 사람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빛과 어둠, 태어남과 늙어감을 유머와 함께 포착해냈다. 그는 말하자면 사진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사진으로 도시와 사람들에게 말 걸기는 그의 일생에 걸쳐 계속된다. 그는 말한다. 내일의 커다란 설렘과 즐거움 중 하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일이라고. 그렇게 말을 거는 그만의 방식이 사진인 것이다. 이렇게도 말한다. “인생이란 늘 즐겁지만은 않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유머가 있다. 유머는 삶의 감정을 숨겨놓은 마지막 은닉의 장소다. 그것은 겸손의 한 형태이며 눈짓으로 조심스럽게 대상에게 다가가는 방법이다.” 마치 랍비나 구루 같은 이 고백이야말로 그의 사진 세계를 여는 열쇠다. 그가 쓴 글 중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파리는 흘려보내는 시간으로 좌석을 예약하는 극장. 나는 그 극장에서(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관객”이라고.

로베르 두아노作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作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1912년생인 그는 25∼26세가 되던 1937년부터 살던 파리 근교 몽루주의 아파트를 수십 년이 지나도록 떠나지 않고 파리로 출퇴근하다시피 하며 무려 40만 장에 이르는 사진을 찍었다. 특히 서민층과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았지만 현실고발이나 분노 같은 것이 아닌 따스함과 유머로 피사체를 바라봤다. 가난한 사람, 순진한 소년, 일하는 서민들을 그는 렌즈 속으로 초대해 들였다. 동시에 우연히 스친 익명의 사람들과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하는 데에 깊은 희열을 느꼈다. 마치 불교의 인연설처럼 그는 스치는 사람과 인연들을 렌즈에 담았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도적으로 연출해 작품을 만든다는 계획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고백한다. 단지 그가 사랑하는 세상, 파리와 파리 근교,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본다’는 기쁨으로 찍을 뿐이라고 한다. 예컨대 극적인 장면을 위해 사냥꾼처럼 찾아다니지 않고 여기저기 찍으며 그냥 그렇게 일상이 사진이 되고 사진이 일상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진을 찍는 것은 그에게 순간의 일별이 아닌 깊은 응시였다. 애정과 긍정이 담긴 눈길의 응시였다. 그는 인상파 화가들이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같은 산, 같은 성당 그리고 볏 짚단을 수없이 그렸듯 파리의 그 뻔한 길과 풍경을 무수히 찍어 새로운 공간들을 창출해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기만의 희열을 느꼈다. 지도에는 잡히지 않는 그만의 공간 속을 조석으로 오가며 빵집 주인, 인쇄업자, 구두수선공, 간판장이, 행인, 아이들과 노인들, 공무원, 연인들을 불러내 그들이 주역이 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일하는 사람들,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인 것이다. 피사체를 볼 때마다 그는 행복과 기쁨에 겨워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안달했고 그 기록의 방식이 바로 흑백의 따스한 사진이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체온, 입김 눈길 그리고 공기가 흐르는 세계였다.

“나는 평생 기쁨과 즐거움에 겨워 이 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에 대한 욕망은 그치는 법이 없다”며, 어린아이 같은 설렘과 흥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평생 찍고 또 찍었다. 만년에 고백하기를 “나는 나를 위한 작은 극장 하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그는 극장의 주인이자 연출자였던 셈이다.

김병종 화가, 서울대명예교수, 가천대석좌교수
김병종 화가, 서울대명예교수, 가천대석좌교수
그의 작품 중 세상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바로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다. 사진 속 거리는 사람과 자동차로 붐비고 있고 뒤로 물러앉은 안개 속에 떠오른 고성(古成 ) 같은 건물은 몽상적이다. 그 붐비는 거리에서 한 남자가 낚아채듯 여인을 한 손으로 안으며 키스하는 장면인데, 행인들은 다른 방향을 보며 무심히 걷고 있다. 도대체 이 한 장의 사진은 왜 그토록 유명해진 것일까. 파리의 관광상품이 돼 오늘날 길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진, 마치 아바나 거리에서 담배를 꼬나문 체 게바라 사진을 무시로 만날 수 있듯 그의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는 에펠탑 사진과 함께 파리의 작은 산업이 된 것이다.

도대체 그는 어떤 마음에서 그 수많은 분위기 있고 아름다운 장소들이 아닌 밋밋한 시청 앞을 자신의 공간으로 택했던 것일까. 일부러 걸어서 파리시청을 찾아가 본다. 그런데 가보니 시청은 그냥 밋밋하고 표정없는 건물일 뿐이었다. 다만 그 앞이 좀 넓은 도로라는 정도였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거리가 그렇게 붐비는 것도 아니었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는 한산했다. 아무리 요모조모 뜯어봐도 그 많은 파리의 아름다운 건축물 중에서 굳이 이곳을 택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는 남자가 순간적으로 여인을 안으며 이뤄진 듯한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연출된 사진이다. 무심히 먼 곳을 보며 지나치는 행인들마저도 세심한 연출인 것이었다. 시청이라기보다는 성당처럼 보이는, 뒤로 멀리 빼낸 배경의 건물 또한 사진 기술로 손을 본 것처럼 보인다. 시청 앞, 붐비는 곳, 제각기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한 남녀가 열렬히 키스하고 있다. 조합이 잘되지 않은 바로 그 지점에 작가는 카메라를 들이댄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길을 가라, 우리는 다만 사랑할 뿐이다.’ 키스의 두 주인공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화가, 서울대명예교수, 가천대석좌교수


■ 사진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는

연출 사진 싫어했지만… 치밀한 연출로 만들어낸 ‘파리 관광사진’의 백미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은 흔히들 ‘파리서지학’ 흑백의 시(詩), ‘행복어 사전’이라고들 부른다. 그만큼 파리와 파리 사람들의 생의 기쁨을 우연성과 유머 속에 펼쳐놓기를 좋아했다. 1912년 봄, 파리 근교의 장티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을 파리 외곽에 살며 파리로 거의 매일같이 헌팅작업을 다녔다. 특히 서민층과 그들의 일터를 렌즈에 즐겨 담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의와 따뜻함을 사실주의적 기법에 의해 전해주려 노력했다. 연출 사진을 싫어해 잔잔한 삶의 현장을 그대로 담기 좋아했던 그가 치밀하게 연출해 발표한 것이 바로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였다. 뜻밖의 장소에서 순간적으로 찍힌 것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훗날 자신도 놀랄 만큼 엄청난 반응과 대중적인 인기를 불러왔고, 이제는 손꼽히는 파리 관광 사진의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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