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 근무 근로자 극단적 선택
52시간 위반업주 벌금400만원


법원이 갓 입사한 직원에게 주 52시간 초과 근무를 하게 했던 업주에 대해서 극단적 선택의 연관성을 인정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52시간 근로제’ 법제화에도 이를 위반하는 사업주를 처벌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 가운데 나온 판결이어서 법조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과로를 요구하던 기존 근로 관행에 경고를 해야 한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재판장 김성훈)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52) 씨에게 벌금 400만 원을 선고했다. A 씨는 서울 강남구의 한 전자상거래업체를 운영하면서 회계팀 소속 신입 직원 B 씨에게 2014년 11월 24일부터 28일까지 5일간 52시간 넘게 일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B 씨는 신용카드 내역 등을 토대로 5일간 64시간 20분을 근무하는 등 매일 야근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루는 오전 9시 20분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6시 50분에 퇴근, 총 19시간 넘게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집에서 3시간도 채 쉬지 못하고 다시 출근해 또 11시간을 일했다. B 씨는 과로에 시달리다 며칠 후인 12월 3일 극단적 선택을 해 사망했다. 노동당국도 B 씨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A 씨는 “자신이 해외에 자주 체류했고 240명 회사 규모에서 개별 직원의 초과 근무 상황을 다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A 씨도 야근이 많은 근무 상황 자체를 알고 있었고,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기 위한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될 정도의 고통이 있었다면 그 고통이 무엇이었는지 숙고하는 것이 타당하고, 고인의 기존 병력을 일부 고려하더라도 과중한 업무가 원인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한때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적절한 근로시간 규제를 통해 일과 여가의 균형을 잡고, 개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가치가 근로기준법을 통해 제도화되고 있다”며 “이제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당연히 과로를 요구하던 기존의 근로 관행에 따른 행위에 일정한 경고를 해야 하고, 그런 측면에서 이 범행에 적절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및 노동계 안팎에서도 이번 판결을 두고 “근로기준법 위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52시간 근로제가 법으로서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데 그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은지 기자 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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