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코로나 위기 와중 양제츠 방한
화웨이 등 中기업 제재 격상 美
한국 G7초청 이어 핵 옵션 시사

미·중 전략 경쟁 뉴노멀 기류
화웨이 대책 미적이는 文정부
친중·친북으로 안보 위기 자초


미국 대선을 70여 일 남겨두고 미·중 전방위 충돌 양상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중국의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楊潔지) 중국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21∼22일 한국을 방문한다. 양 위원의 방한에선 문재인 정부가 공을 들여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관측되지만 통상 정상회담 조율은 양국 외교 당국의 몫이다. 따라서 왕이(王毅) 외교부장 대신 양 위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와중에 서울을 찾는다는 것은 다른 어젠다가 더 있다는 뜻이다.

요즘 중국 상황은 어렵다. 우한(武漢)발 코로나19에 대해 세계 각국은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이후부터는 40년간 이어진 대중 관여정책을 끝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국제사회의 반중 여론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최고조에 달한 기류다. 미국은 지난 17일 화웨이 제재를 한 단계 격상, 미국 기술이 사용된 반도체의 화웨이 수출 금지를 발표했고 화웨이 38개 계열사에 대한 거래제한 조치도 했다. 우방국들에 화웨이 5세대(G) 장비 대신 삼성과 에릭손, 노키아 장비를 사용하도록 하는 ‘글로벌 반(反) 화웨이 외교’도 강화했다. 중국의 모바일 앱 틱톡과 위챗 사용을 금지한 데 이어 알리바바 제재도 검토 중이다.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당선돼도 기류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미 의회도 대중 강경책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과거 한·미 협상 의제가 되지 못했던 현안이 미국에서 제안되거나 허용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한국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최근엔 핵 개발 허용 가능성도 시사했다. 지난 11일 MSNBC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국 공세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한국과 일본, 대만의 핵무장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앞으로 두 달간 주요한 논의 주제”라고 언급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애매하게 언급한 외교 안보 이슈는 이후 대부분 현실화했다. 그가 중국과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한국의 핵 옵션을 검토하고 있음이 드러난 만큼 문 정부도 핵 개발 문제를 미국과 협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미사일 지침을 개정해 고체연료 사용 규제를 풀었다. 이제 남은 장애는 사거리 800㎞ 제한뿐이다.

양 위원의 방한은 세계적 반중 기류와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 움직임이 뚜렷해진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문 정부의 친중 성향을 익히 알고 있는 중국이 양제츠 카드를 꺼낸 것은 미국의 동맹국 중 가장 약한 고리로 여겨지는 한국을 이용해 국제사회의 반중 여론을 뒤집어보겠다는 꼼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미·중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것에 대해 “딜레마가 아닌 축복”이라고 언급했던 적이 있다. 군사동맹인 한·미 관계를 한·중 관계에 평면적으로 대입해 논란을 불렀지만, 그래도 당시는 미·중 관계가 나쁘지 않았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였다. 미·중 우호 시대였기에 박 전 대통령은 중국의 러브콜을 축복이라 믿고 톈안먼 망루에 올랐지만, 후유증도 컸다. 그러나 지금은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뉴노멀이 되는 기류다. 미·중 양다리 걸치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문 정부는 2018년 5G 장비 선정 때 시장에 맡긴다는 논리로 화웨이의 진입을 허용했다. 미국이 미군기지 근처의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를 밝혔을 때도 미군 부대 근처엔 화웨이 장비가 깔리지 않았다고 해명에 급급했을 뿐 미국의 기류 변화를 읽지 못했다. 화웨이에 대해 안보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는 움직임도 없었다. 당시만 해도 화웨이는 경제 이슈였지만, 이젠 글로벌 안보 문제가 된 만큼 선택이 불가피하다. 중국이 내거는 대북 문제 공조 제안에 현혹돼 화웨이에 대한 입장을 유보하는 형식으로 사실상 용인할 경우 한국은 친중 전초국으로 간주돼 한·미 간 외교 안보 협력도 어려워질 수 있다.

굴욕적 ‘3불(不) 합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사드 보복을 풀지 않고 있다. 연예·게임 산업 등에 대한 한한령(限韓令)도 여전하다. 문 정부는 양 위원 방문에 앞서 화웨이 문제를 비롯해 미·중 디커플링 전면화에 대비한 대책부터 세워야 한다. 연초 시 주석 방한에 목을 매면서 코로나19 조기 차단에 실패했던 문 정부가 또다시 ‘시진핑 쇼’에 정신을 판다면 국가적 재앙을 피하기 어렵다.
이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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