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법부의 ‘정치 판결’

정치편향·여론재판에 不動의 사법원칙 ‘공정성’ 훼손… 특정 정치 집단과 교감했다면 ‘사법농단’

대법원장 선거제 주장은 사법 민주성에 대한 몰이해… 법·정의의 실현은 공정한 재판으로만 가능


정치는 모든 국가 사무와 맞물려 있다. 민주적 정치과정을 통해 모든 국가기관의 구성, 권한, 활동방식 등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기관에 따라 또 그 소관 업무에 따라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사법부다. 그런데 최근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정치 판결’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정치 판결’의 증가와 파장

점차 권력과 친정권 방송의 ‘권언유착’으로 드러나고 있는 ‘검언유착’ 공작 의혹 사건과 관련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 대한 영장 발부는 매우 우려스럽다. 검찰 수사에서 검언유착의 사실관계가 소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판사가 이를 기정사실로 전제하면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킨 것이었다.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도 심각했던 건 마찬가지였다. TV토론에서 이 지사가 ‘거짓말’을 했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적극적인 반대 사실의 표명이 아니기 때문에 공직선거법에서 금지하는 허위 사실의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에 대해 국민이 어떻게 납득할 수 있을까. 법원의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 심사 기준에 의문을 표하는 시각도 많다. 법원이 현 정권 인사의 영장은 기각하고, 전 정권 인사나 현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인사의 영장은 쉽게 발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판사들과 특정 정치집단이 교류·교감을 통해 정치적 판결을 한다면 이것이 곧 ‘사법농단’이다. 최근 정치적 판결이 많아지고 대법원조차 불신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사법 不動의 본질, 공정성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이다. 바꾸어 말하면 공정하지 않은 재판이라면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힘든 절차에 따라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이유가 없다. 과거 사또가 재판하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면 왜 막대한 세금을 들여 법원을 만들고 판사를 뽑고 신분 보장까지 해야 하는가.

정치적 판결은 말할 것도 없이 대표적인 불공정 판결이다. 만일 정치적 판결이 묵인되고 계속 확산할 경우에는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존중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지금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질 수 있다.

사법부의 판단이 존중되고 사법부 독립이 존중돼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법의 이념인 정의를 실현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정의를 주장하지만, 이해관계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가장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한(혹은 구성해야 하는) 것이 사법부이다. 그 때문에 사법부의 독립은, 그 목적인 재판의 공정성과 함께, 인권보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로 인정되며, 민주국가의 근본 가치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내용에 포함된다. 사법부의 독립이 자기 목적은 아니지만, 사법부의 독립이 부정될 때 인권 보장 또한 불가능하다는 인류 역사의 경험 때문이다.

헌법재판 은 어떠한가. 종래 헌법재판이 정치과정을 대상으로 하는 재판이라는 점을 이유로 이를 ‘정치적 사법작용’으로 보면서 법원의 재판과 구별하는 학자도 있었다. 그러나 사법의 본질로서의 공정성, 이를 위한 전제로서의 독립성과 중립성 등에서 일반 법원의 재판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헌법재판과 법원의 재판을 같은 사법 작용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삼권분립 속에서 입법과 집행(행정)의 구성 방식, 권한 범위 및 상호 관계는 의원내각제냐 대통령제냐 혹은 분권형 정부(이원정부제)냐의 정부 형태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정부 형태 아래에서도 사법은 부동(不動)이다. 민주정치의 실현 방식에 대해서는 다양한 대안이 있지만, 법과 정의의 실현은 오로지 공정한 재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법의 민주성과 정치성의 구분

정치 판결에 대한 논란과 더불어 이른바 사법의 민주화가 쟁점화하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의 민주성이 강화돼야 하며, 이를 위해 사법에도 국민의 민주적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이를 근거로 정치적 판결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도 있다.

그러나 사법의 민주성과 정치성은 구분돼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사법의 민주성과 정치과정의 민주성, 혹은 행정절차의 민주성은 각기 다른 성격과 다른 구조를 갖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삼권분립의 틀이 만들어진 것은 입법·집행(행정)·사법의 성격 차이를 고려한 것이다. 입법부는 수백 명에 이르는 의원이 공동 결정을 통해 민주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 ‘집단적 대표’로, 집행부(행정부)는 행정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피라미드형 조직을 전제로 그 최고 책임자를 선출하는 ‘개인적 대표’로, 그리고 사법부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전문성과 독립성, 중립성을 갖는 기관으로 구성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회는 국민에 의해 선출돼 민주성은 크지만, 공동 결정 과정에서 신속성과 효율성은 약화한다. 반면 정부는 대통령 이외에 총리나 장관 등이 국민에 의해 선출된 게 아니기 때문에 민주성이 약하지만 업무를 일사불란하게 처리할 수 있는 효율성이 높다. 즉 민주성만 놓고 보더라도 정치기관인 국회나 행정기관인 장관 등의 그것은 서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물며 정치적 중립성의 바탕 위에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할 사법부에 대해 사법 민주화를 앞세워 대법원장·대법관의 선거제 등을 주장하는 것은 사법의 본질을 파괴하려는 것이며 사법 민주성에 대한 몰이해일 뿐이다. 정치적 편향성을 갖는 재판은 공정한 재판일 수 없으며 정치화된 사법부는 진정한 사법부가 아니다.

◇여론재판은 극단적 포퓰리즘

여론재판 은 나쁘다고 인정하면서, 왜 사법의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여론재판을 정당화하려고 하는가. 여론재판이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법의 본질에 반하기 때문이다. 여론재판은 포퓰리즘의 극단적인 형태다. 포퓰리즘이란 다수의 지지를 근거로 소수자의 인권 등 근본 가치를 해치는 정치형태다. 이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사법부다. 그런 사법부조차 여론재판을 할 정도라면 포퓰리즘은 이미 국가 전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의는 어느 쪽이 다수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여론의 향배에 따라 재판의 결과가 바뀐다면 재판의 공정성은 물론 일관성에 대한 신뢰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국민을 위한 사법,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재판은 원고와 피고 사이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재판이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나에게 불리한 재판이 되더라도 입장이 바뀌었을 때 나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재판이 신뢰할 수 있는 재판이다. 사법에 대한 신뢰를 위해서는 재판의 일관성과 계속성, 신중성이 요청된다. 판사가 바뀔 때마다 판결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판사의 개인적 소신이 아닌 직업적 양심이 우선돼야 한다. 판사 개인의 소신에 매몰돼 판례의 일관성이 수시로 깨진다면 사법 혼란이 야기될 것이며 국민의 불신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판례 변경도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라도 판례 변경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세줄 요약

사법 不動의 본질은 공정성 :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임. 판사가 권력과의 교류·교감을 통해 정치 판결을 한다면 이것이 ‘사법농단’이며, 인권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흔드는 행위. 법과 정의의 실현이 공정한 재판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건 부동의 사법 원칙임.

민주성과 정치성의 구분 : 사법의 민주성이 정치성은 아님. ‘사법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정치성을 개입하는 것은 사법의 본질을 파괴하는 것임. 정치적 편향성을 갖는 재판은 공정한 재판이 아니며, 정치화한 사법부는 이미 진정한 사법부로 볼 수 없음.

여론재판과 포퓰리즘 : 여론재판은 포퓰리즘의 극단적인 형태이며 사법의 본질에 반하는 것. 여론의 향배에 따라 재판의 결과가 바뀐다면 재판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음. 판사의 직업적 양심에 따른 재판의 일관성·계속성·신중성이 요청됨.


■ 용어 설명

여론재판 : ‘여론재판’은 특정인이나 특정 사건을 심판하는 데 여론의 힘을 이용하는 것. 권력이 여론 장악으로 반대자를 단죄·처벌함으로써 대중을 공포로 몰아넣어 정권에 순응시키려는 수단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음.

헌법재판 : ‘헌법재판’이란 헌법이나 국민 기본권 문제에 분쟁이 생길 때 헌법심판을 통해 해결하는 재판. 위헌법률심판, 고위 공무원 파면을 결정하는 탄핵심판, 정당 해산 심판, 권한쟁의 심판, 헌법소원 등을 관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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