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하안송 기자
그래픽 = 하안송 기자

- 게임 오버 | 한스 페터 마르틴 지음, 이지윤 옮김 | 한빛비즈

1996년 ‘세계화의 덫’ 책 통해
20대80 양극화 사회 위험 경고

이번엔 정치·기후·환경·기술 등
자본주의 질서 전방위 붕괴 진단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들 집권
신민족주의 등에 美·유럽 ‘몸살’

중국식 ‘빅브라더 모델’ 부상중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해선 안돼”


20여 년 만에 다시 책으로 만난 저자는 두드러지게 걱정이 늘어 있었다. 걱정거리가 훨씬 많아졌을 뿐 아니라 ‘이제 시간이 없다’는 절박함도 비교할 수 없이 강해졌다. 지난 1996년 ‘세계화의 덫’이라는 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본질을 ‘20 대 80 사회’라는 첨예한 양극화 모델로 명쾌하게 정리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했던 한스 페터 마르틴의 이야기다. 이번엔 그가 서구가 이끌어 온 자유민주주의라는 문명화 모델의 종언을 경고하는 책 ‘게임 오버’(원제 ‘Game over’)로 한국 독자들을 찾아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이라고 표현했듯이, 자유민주주의는 한때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에 대한 서구 민주주의 진영의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는 승리의 징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주의가 부재한 곳에서도 자본주의는 작동한다”는 저자의 말은 자유민주주의가 지배하는 게임은 이미 끝났다(“Game over!”)는 선언과도 같다. 번영의 과실은 소수만 누리며 민주주의는 모두에게 조롱받고, 신(新)민족주의가 여기저기서 발호하는 작금의 사태가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게임 오버’에서 저자는 이 게임이 끝난 ‘다음’에 어떤 무시무시한 세계가 펼쳐질지 조망하면서,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급진적이고 즉각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중국은 권력과 엘리트가 주도하는 효율성을 무기로 단기간에 세계의 리더로 부상했지만, 민주와 자유를 기반으로 한 ‘열린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중국은 권력과 엘리트가 주도하는 효율성을 무기로 단기간에 세계의 리더로 부상했지만, 민주와 자유를 기반으로 한 ‘열린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세계화의 덫’에서 저자의 경고가 극심한 경제적 양극화가 가져올 삶의 질 저하와 민주주의의 위기에 방점을 뒀다면, ‘게임 오버’에서 언급된 위협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지배해 온 세계 질서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 국제정치, 사회, 기후, 환경, 기술 등 전방위적인 영역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없이도 계속될 트럼프주의 때문에, 중화인민공화국의 끊임없는 권력 확장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정보 문어발 기업들 때문에, 2020년 세계 각국이 겪는 유동성 위기와 주거문제 때문에, 그리고 기후변화 해결을 위해 책임져야 할 할당량을 줄이려고 각국이 벌이는 투쟁 때문에” 세계의 상황이 좀 더 첨예해졌다는 저자의 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유럽과 미국의 현주소는 이런 진단이 과장된 게 아님을 보여준다. 이 국가들은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의 집권, 쇼비니즘 성향 신민족주의자들의 득세, 좌·우파의 극단적 충돌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헝가리, 폴란드, 터키 등은 21세기에도 선거를 통한 권위주의 정부의 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악몽은 이미 옛이야기가 된 것처럼,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도 극우 세력의 집권이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아프리카와 중동발 이민자 유입이 직접적 원인이 된 것처럼 얘기되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삶의 불안정성 심화라는 내부의 취약성이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국에서 나타나는 투표율 상승 경향은 더 이상 민주주의 회복을 알리는 희망의 근거가 아니다. 오히려 두 패로 나뉜 채 분노를 표출할 계기만 기다리는 유권자가 그만큼 많다는 사실을 보여줄 뿐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감, ‘군부 독재면 어떠냐’는 냉소는 엘리트층을 포함해 전 계층을 휘감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로봇 기술의 진화와 디지털화, 글로벌 금융 위기와 미국·중국을 중심으로 한 무역전쟁, 기후 변화에 따른 세계적 재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확인된 감염병의 위협 등 전 세계 차원의 위협 요인은 기존 게임의 종말을 재촉한다.

저자의 주장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중국 감시자본주의’의 세계화에 대한 우려다. 초고속 성장에 이어 코로나19 사태 대응 과정에서도 중국은 권력이 주도하는 체제의 효율성을 과시했지만, 저자에게 중국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의 감시 체제와 다를 바 없다. 자유·민주를 기본으로 한 ‘열린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자유주의가 사라진 감시 국가에서는 간섭이 수시로 이뤄진다. 무늬만 토론일 뿐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대화가 일상화되고,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은 입을 열기도 전에 저지당한다.”

저자는 자유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덫’에 걸려 좌초하고 있지만, 최소한 그 자리를 중국식 모델이 차지해선 안 된다며 직설적으로 경고를 쏟아낸다. “중국의 감시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는 것을 정치적·경제적으로 막아내야 한다 … 중국이 시장자본주의 국가로 인정받아서는 안 된다 … 미국 정부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유럽 국가와 기업이 멍청이처럼 중국 권력자들의 손에 놀아나선 안 된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거대한 변화의 ‘앞’이 아니라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즉각적인 행동을 위한 20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한 줌밖에 안 되는 극단주의자만 빼고 좌파와 우파, 부자와 빈자, 노조와 신자유주의자, 청년과 노인, 여성과 남성이 대화와 연대에 나서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20여 년 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위험성에 대한 자신의 ‘경고’가 결과적으로 ‘예언’이 되고 만 게 저자를 더 긴장하게 하는 듯하다. 극단으로 치닫는 현 상황의 결론이 “전쟁이 될지 아니면 평화적 혁명이 될지는 지구촌 시민들에게 달렸다”는 호소가 이번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552쪽, 2만50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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