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가 둘이래요! | 정설희 글·그림 | 노란돼지

유순한 그림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림이 자기주장이 강하다고 말하면 좀 이상하게 들리지만, 분명히 기운 센 그림이 있다. 그림책의 그림은 사람의 말씨나 문체처럼 고유한 어조를 지니고 있어서 어떤 그림책을 읽을 때는 책장을 넘기는 목덜미가 바짝 긴장하기도 한다. 그림의 채도와 명도가 높거나 상업 캐릭터처럼 수용자에게 친밀한 이미지를 구현한다고 해서 유순한 그림이 되는 건 아니다. 특징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그림의 선과 색, 인물의 표정이 독자의 감정 주파수를 배려하고 있어서 문득 봄바람처럼 곱게 느껴지는 그림들이 있다. 정설희의 그림책 ‘나는 엄마가 둘이래요!’가 그렇다. 풍경은 익숙할 만큼만 사실적이고 인물의 표정이나 동작을 함부로 부풀리지 않아서 다 자연스럽다.

그런데 작품의 서사는 굳세다. 앞면지에는 운동장에서 말다툼하는 두 명의 심각한 어린이가 나온다. 표지에서 엄마에게 환하게 손을 흔들고 놀러 나온 주인공은 어느새 그 아이들을 말리러 뛰어가고 있다. 속표지는 다투던 두 아이를 포함해서 세 아이가 소꿉놀이하는 장면이다. 벌써 화해한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아이는 아빠를, 다른 아이는 엄마를 하겠다고 하는데 우리들의 주인공이 여기서 “나도 엄마!”를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어떻게 엄마가 둘일 수 있느냐는 반발에 주인공이 벌떡 일어나면서 “아니야. 나도 할 수 있어. 나는 엄마가 둘이래”라고 외친다. 두 아이는 말도 안 된다고 성을 내지만 주인공은 이쯤이야 하며 밝게 웃는다.

그렇다. 이 책은 제목처럼 엄마가 둘인 아이의 이야기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낳아준 엄마가 또 있다. 주인공은 그 엄마가 어떤 얼굴일까 틈틈이 상상한다. 기관차 운전사일까, 자동차 수리공장의 만능 정비사일까, 기린과 침팬지를 돌보는 사육사일까 생각하면서 한바탕 상상의 엄마놀이를 펼치며 뛰어논다. 그런데 넘어진 주인공을 꽉 붙잡아주는 엄마가 나타난다. 구조대원이다. 낳은 엄마가 기른 엄마와 겹쳐지는 순간 독자는 둘 다 한 아이의 엄마라는 걸 깨닫는다. 아이는 “엄마!”를 부르면서 현실로 돌아온다. 구해준 엄마가 곁에 있다. 이 그림책에서 제일 좋은 것은 이어지는 다음 대화다. “잠깐 다른 엄마 생각하고 있었어. 나를 배 속에서 키워준 엄마.” “그랬구나.” 포근하다. 엄마가 둘인 아이들이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멋진 일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세 명이 엄마가 되어주고 백 명이, 만 명이 엄마가 돼주면 좋겠다. 유순한 그림책의 강력한 힘이 우리의 편견을 바꾼다. 40쪽, 1만3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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