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거 꺾고 첫 메이저대회 품어
기쁨도 잠시 여자친구의 불륜
부모의 이혼·형의 죽음 ‘불운’
정신적 고통으로 경기력 하락
‘타이거슬램’이 달성된 2001년 4월의 마스터스 이후 3개월 후인 7월. 영국의 서쪽 바닷가 랭커셔주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스 골프클럽에서 브리티시오픈이 열리고 있었다. 이 대회 주인공은 데이비드 듀발(미국)이었다. 듀발은 타이거 우즈(미국)보다 4년 빠른 1993년 프로에 데뷔했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듀발은 그런데 우즈가 데뷔하던 1997년부터 두각을 나타내더니 1998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상금랭킹 1위까지 올랐다. 프로 8년 차였던 듀발은 당시 브리티시오픈에서 첫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스코틀랜드 출신 콜린 몽고메리가 1라운드 65타, 2라운드 70타를 쳐 중간합계 7언더파로 단독선두. 몽고메리는 하지만 3라운드에서 73타로 부진, 선두권에서 빠졌다. 10위권 밖에 머물렀던 듀발은 3라운드에서 65타를 쳐 마지막 날 챔피언조에 합류했다. 그러나 4명이 6언더파가 되면서 공동선두. 독일의 알렉스 체카와 베른하르트 랑거, 웨일스의 이안 우스남, 그리고 듀발이었다. 듀발과 랑거가 챔피언조에, 그 앞에서 우스남과 체카가 4라운드에 돌입했다. 치열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3번 홀이 지나면서 듀발의 독주가 시작됐다. 듀발은 먼저 버디를 잡아 7언더파로 1타 앞서 나갔다. 랑거는 전반을 파 9개를 기록했고, 앞조의 우스남과 체카는 자중지란 끝에 보기와 더블 보기, 트리플 보기까지 범하며 일찌감치 무너졌다.
한때 세계 1위에 올랐으면서도 메이저대회 우승이 없었던 듀발에게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스 골프클럽은 큰 선물을 안겼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도 잠시. 그 대회를 정점으로 듀발은 내리막을 걷는다. 이후 메이저대회는 물론 PGA투어의 어떤 대회에서도 우승은 고사하고 컷오프를 통과하지 못하는 나락에 떨어지고 만다. 그것도 거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듯 그 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고 급기야 수년간 투어카드까지 잃고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해야 하는 처지로 몰렸다.
한때 우즈의 독주를 막을 유일한 대안으로 기대를 모았던 듀발의 추락엔 이유가 있었다. 경기 외적 요인이 더 많았다. 골수를 제공한 형의 죽음을 시작으로 여자친구의 불륜, 부모의 이혼, 그리고 부동산 투자마저 막대한 손해를 보는 등 가족사와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부상 역시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듀발은 백인 선수로는 드물게 하체에 비해 상체가 길어 골프스윙에는 적합한 신체 조건을 지녔다. 그러나 지나치게 허리에 의존한 스윙으로 허리부상까지 당해 골퍼로서의 생명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하지만 은퇴는 고려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을 하며 PGA투어에 초청선수로 가끔 얼굴을 비쳤다. 듀발은 2012년 골프채널의 해설자로 변신, 선수 시절보다 더 많은 인기를 끌었다.
골프역사칼럼니스트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