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가을에 있었던 이야기다. 고창 장날에 대장간을 하시는 노부부가 있다. 당시 식당을 했던 나는 그 대장간에 식칼을 갈러 자주 갔었는데, 어느 날 그 어른들의 생활이 궁금해져 출근하시는 시간에 맞춰 나도 나가서 살펴보기로 했다. 새벽 3시 시장에 나오는 어른들보다 다소 늦은 4시가 돼서야 대장간에 도착했다. 무거운 바구니와 농기구 몇 개를 나르고 나니 일의 순서를 모르는 나는 자칫하면 방해가 될 것 같아 한쪽에 앉은 채 그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궁금했던 이런저런 것을 여쭤보기도 했다.
“사람은 선하게 살아야 돼. 젊은 사람은 살날이 많잖아”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는 12세 때부터 아버지 따라서 대장간 일을 시작했다며 올해 나이가 79세라고 하셨다. 어려서부터 대장간 일을 했기에 돈도 많이 벌어봤고, 자식 교육도 남부럽지 않게 시키고 결혼까지 다 시켰다고 하셨다. 정읍이 고향인 노부부는 지금도 정읍에 살고 계신다고 했다. 정읍장, 고창장, 태안장, 해리장 등 장마다 대장간을 두었으며, 돈 벌어서 자식들 뒷바라지하는 재미에 힘든 줄 몰랐다고 한다.
조금 후 대장간 옆에서 만복식당을 하는 할머니가 출근하셨다. 건어물 장사를 60년 하다가 그만두고 식당을 하신다고 했다. 그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장간 할머니는 팥죽 집 아주머니가 아파서 며칠째 안 나오신다며 걱정을 하셨다. 그러고는 나더러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태어난 곳이 아산이며 거기서 살고 있다고 하자 “아산 사람들은 다 좋다”며 덕담을 해주셨다.
날이 밝아 오고 3시부터 시작된 점포 진열이 아침 7시가 돼서야 끝났다. 나도 아침밥을 먹을 겸 해서 노부부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애써 만류하셨다. 결국 할머니와 둘이 만복식당에서 시래기 해장국을 배부르게 먹었다. 갈치, 조기조림, 열무김치, 배추김치, 새우젓, 시래깃국, 애호박찌개 등 어쩌면 시골이라 더 정겨워서 맛나게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만복식당 할머니께서 밥값을 내는 나더러 말씀하셨다. “복이 많으신 양반이고만. 다음에 와. 그냥 밥 한 그릇 줄게.” 밥그릇에 타 주는 믹스커피 한잔을 밥보다 더 즐겁게 마셨다.
유난히 길고 비가 많이 내렸던 이번 장마에 가게 문은 열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그날처럼 비가 오니 더 생각나는 대장간 노부부. 이번에 고향에 가면 그때처럼 밥 한 끼 대접하고 싶다. 그날, 그 사람들이 그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