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뒤돌아 앉아서 곰곰이 벽을 맞대고/ 허공에 고갤 묻으면 입속엔 가득 흙먼지/ 오래전 읽었던 책들은 모두가 남의 이야기/ 차라리 거릴 걸으며 내 안의 말을 찾는다’. ‘한국 모던록의 자존심’ ‘1세대 인디 밴드의 아이콘’ 등으로 불리는 그룹 허클베리핀의 제1집 ‘18일의 수요일’에 수록된 ‘첫 번째 곡’ 시작 부분이다. 1998년 발표된 그 앨범엔 ‘나 한없이 들판 위를 헤맬 때/ 아 그때 하얀 눈이 내렸어/ 난 한참을 편히 쉴 곳 찾는/ 난 마음껏 날아갈 수 없는/ 난 한참을 편히 쉴 곳 찾는/ 난 나이를 잊은 갈가마귀’ 하는 노래 ‘갈가마귀’도 담겼다. ‘보도블럭’ ‘불을 지르는 아이’ 등 전체 11곡 모두 명곡이다. 그중 8곡을 작사·작곡한 이기용(48·기타·보컬)은 그 음반으로, 신중현·김민기·한대수·송창식·정태춘·조동진 등으로 이어진 ‘가장 창조적 싱어송라이터’ 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허클’로 약칭되는 3인조 허클베리핀은 리더 이기용이 1997년 결성했다. 구성원 변화로, 현재 멤버 이소영(43·보컬·신시사이저)과 성장규(40·기타·신시사이저·드럼)는 각각 2001년과 2011년에 합류했다. ‘문학적인 은유(隱喩)의 가사’ ‘쓸쓸한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당당하고 꿋꿋한 노래’ ‘공격적인 듯하면서 서정적인 음악’ 등의 평가를 받는다. 제1집과 함께, 제3집 ‘올랭피오의 별’도 2007년 발표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들었다. 제4집 ‘환상… 나의 환멸’은 2008년 제5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음반상을 받았다.
2018년 제6집 ‘오로라 피플’에도 극찬이 이어졌다. 타이틀 곡의 한 대목은 ‘이지러진 저 달을 봐/ 성스러운 저 검은 숲/ 쏟아지는 빛에 싸여/ 밤이 너의 눈에서 자라고 있어/ 바람에 별이 떨어져 들판에서 흩날릴 때/ 나라는 존재는 없었어/ 나라는 존재는 먼지일 뿐’이다. ‘나는 너의 다른 세계/ 나는 너로 태어났어’ 하는 노래 ‘항해’, ‘나 이제 하루의 삶을 씻고/ 너에게 날아가 얘기하네/ 침실에 두고 온 오랜 꿈과/ 새로운 우리의 비밀들을’ 하는 ‘라디오’ 등도 모던록 지평을 더 넓게 열어 보였다. 제7집 ‘마음의 지도’를 준비 중인 허클의 올해 첫 콘서트가 오는 29일 서울 마포 벨로주홍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취소됐다. ‘음악은 치유의 메시지’라고도 믿는 이들이 공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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