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환 산업부 차장

재계가 그토록 반대해 온 ‘공정경제 3법’(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이 지난 2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정부는 9월 중 입법을 완료한다는 목표인데, 거대 여당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 상황을 감안하면 법안 통과는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이들 개정안은 재계가 기업의 고유한 경영활동을 침해받을 수 있다며 내용 수정을 수차례 건의했던 법안들인데, 이런 요구사항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정부 안대로 의결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물론, 대기업을 주로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 단체가 일제히 법안 수정을 여러 차례 건의했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단체뿐 아니라 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중소·중견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단체들까지 법안 수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런 기업들의 건의를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률 제정은 합당한 제정 이유를 갖는다. 공정경제 3법으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대기업의 부당한 경제력 남용을 막을 수 있다는 게 정부의 법 개정 취지다. 하지만, 재검토를 요청했던 재계도 나름의 주장이 있다. 개정안에 담긴 여러 제도가 지나치게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법 규제를 받는 처지에서는 나름대로 일리 있는 항변이다.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감사위원 분리 선임제’의 경우 감사위원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라는 게 정부 주장이지만, 기업들은 외부세력에 의해 경영권을 침해당할 수 있는 근거로 악용될 가능성을 걱정한다. 충분히 이해되는 측면이다. ‘전속고발권 폐지’ 역시 담합이라는 잘못된 기업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개정 취지의 반대편에, 경쟁사의 무분별한 고발 남용과 검찰 및 공정거래위원회의 중복 조사로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 대립한다. 이 역시 기업 처지에서 보면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에 대한 시각차가 존재하는 만큼, 공정·공평한 법률 제정을 위해 이해 당사자 간 대화와 협상을 통해 수정·보완하는 게 입법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과정이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정부의 이런 ‘안하무인’ 태도는 상대방에 대한 존재감은 물론, 기업을 ‘사회악(惡)’으로 인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할 뿐이다.

기업을 무시하는 정부·여당의 행태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한 달’ 일한 직원에게까지 퇴직금을 주도록 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에 대해 재계가 반대 의견을 냈지만, 정부는 아무 반응이 없다. 지난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안도 재계가 재검토해 달라고 하소연했지만, 정부는 이를 뭉개버렸다. 지난해 4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로 초청한 경제계 원로들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문제점을 우회적으로 지적하며 정책 변화를 요청했지만, 문 대통령은 그저 한 귀로 흘렸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폐해를 경고했던 수많은 경제학자의 목소리는 그저 ‘공허한 외침’으로 묻히고 말았다.

현 집권세력은 과거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내세우며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몰아붙였다. “보수는 위쪽에서, 진보는 아래쪽에서 뛰기 때문에 진보 진영은 골 넣기가 힘들다”며 반대 세력을 공격했다. 이제 자신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귀 닫고 눈 감은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물론, 이 역시 ‘소귀에 경 읽기’일 테지만….
임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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