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축된 일상이 벌써 겨울, 봄, 여름, 가을 네 번째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가족과 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욕망은 마음 한구석에 꽁꽁 묶어둔 채 그저 혼자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다행히 독서와 가드닝은 요즘 같은 때 큰 위안이 된다. “만약 당신이 정원과 서재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는 키케로의 말을 그 어느 때보다도 실감한다.
과거(코로나 이전)엔 틈나는 대로 숲과 정원을 맘껏 찾아다니는 시간이 참 좋았다.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 속에 무뎌진 오감이 다시 살아나고, 계절마다 피는 꽃들과 더불어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북적이는 분위기가 살맛을 느끼게 해 줬다. 그렇게 자연과 정원에서 느끼며 위로받았던 모든 것을 다시금 생생하게 일깨워 주는 아주 반가운 책을 만났다.
야생으로부터 큰 위로를 받아 지독한 우울증을 이겨낸 사람의 이야기. 에마 미첼의 ‘야생의 위로’에는 자연과 산책에 관한 보약 같은 기록, 보기만 해도 힐링되는 자연물에 대한 스케치와 사진이 가득 담겨 있다. 어떻게 자연이 우리 신체 호르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 근거도 꼼꼼히 다루고 있다. 저자가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을 일 년 동안 거닐며 기록한 묘사는 나도 언젠가 아주 비슷한 방식으로 느꼈던 기억들이기도 했다. 가령 저자는 이른 봄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스노드롭에 관해 “몇 주 동안 알싸한 향신료의 맛을 못 본 뒤 먹는 카레” 혹은 “애매한 3월의 햇살을 받으며 그해 최초로 야외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이라고 말한다. 내가 태안의 천리포수목원 오솔길에서, 혹은 미국 윈터투어 가든의 ‘3월의 언덕’에 흰색 카펫처럼 피어난 스노드롭을 봤던 때의 느낌을 이보다 더 맛깔스럽게 표현할 수 있을까? 숲과 정원에서 꽃과 곤충, 새들을 만나며 갖게 되는 감정들을 다른 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책을 읽는 것은 같은 곡을 여러 다른 연주자의 버전으로 감상하는 것처럼 흥미롭다.
식물과 정원 분야에서 일하면서 처음엔 원래부터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줄 알았다. 내가 만난 식물 마니아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식물을 찾고 가까이하며, 식물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 사람은 태생적으로 식물과 자연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기의 문제일 뿐 모두 언젠가는 고향을 찾듯 야생으로의 회귀를 꿈꾸게 되는 것이다. 비록 우울증이 계기가 되긴 했지만 저자도 자연을 찾았고 그 속에서 크나큰 기쁨의 선물을 받았다.
지금처럼 힘든 시기는 사람들이 식물과 자연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성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말이 큰 위로와 희망을 준다.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밤은 짧아질 것이며 내 생각들도 다시금 밝아지고 가벼워지리라.”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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