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 많이 흘렀지만, 종종 생각나는 고마운 분이 계셔서 그리운 마음을 글로나마 표현하려 한다. 조경업을 크게 하셨던 한규삼 대원농원 회장님이시다. 20여 년 전 처음 그분을 뵈었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연로하신 분이셔서 아버지 같은 푸근함과 자상하신 느낌을 함께 받아 우리 부부는 더 정감이 들었다.
조경수를 사러 가면 ‘자연 샘’이라는 그분의 단골 갈빗집에서 음식 대접을 해주시곤 하셨는데 앵무새가 ‘안녕’ 하며 인사를 건네는 꽤 분위기 좋은 곳으로 기억한다. 황송할 만큼 자상함으로 앞접시에 구운 고기를 올려주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 회장님은 “수많은 사람이 나무를 사러 왔지만, 식사를 함께한 사람은 그대 부부가 처음이다. 또한 정직한 사람들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 내심 기쁜 마음이 들어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한 회장님은 1·4 후퇴 때 가족을 북에 남겨두고 단신으로 월남한 슬픈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살아오셨다. 부모님은 물론, 임신 중인 아내도 두고 내려왔으니 인간적 고뇌가 얼마큼 컸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 한 회장님의 고향은 함경남도 원산이다. 여덟 살 때 강원도 통천으로 이사했다. 통천은 고 정주영 회장님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한 회장님은 매우 검소하셨고, 생활력이 강한 분이시란 걸 알게 됐다. 산(山)과 관련된 일부터 시작해 여기저기 큰 농장을 만드시기까지 근면 성실함을 몸소 실천하신 것이 존경스러웠다. 10대 때 부친의 목재업을 돕다가 제재공장에 취직, 나무를 배우고 목재상을 거쳐 대농장주가 됐으니 천생의 나무꾼이다. 한 회장님은 ‘나는 행복한 나무꾼’이라는 자서전도 집필하셨다. 선대로부터 배우고 물려받은 나무꾼 인생 60년을 담았다.
한 회장님은 그 책을 우리 부부에게 선물로 주셔서 소중히 생각하고 실로 오랜만에 책을 읽어보는 계기가 됐다. 그러다가 어느 지인이 궁금해하여 빌려주었는데 돌려받지 못해서 너무 아쉽다. 간혹 명절 땐 갈비를 한 짝씩 보내주셔서 어려운 형편의 우리에게 고기를 실컷 먹게도 해주신 고마운 분이시다. 그 마음에 보답하고자 해가 바뀔 때 신년 인사를 정성 들여 손편지로 써서 보내드리면 영락없이 그분은 깨알 같은 글씨로 답장을 보내주셨다. 아버지 같은 자상한 분이셨다. 살면서 친인척이 아닌 남에게 처음으로 받은 감사한 마음이었기에 잊고 살다가도 가끔은 그분이 생각난다.
나무는 응달진 비탈이나 척박한 바위산이라도 아무런 불평 없이 뿌리를 내리고 비바람을 이겨낸다. 나무는 참고 견디는 마음으로 본분에 만족할 줄 아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철학을 가르쳐 준다. 한 회장님은 여든이 넘도록 건강하게 사는 이유가 바로 이 같은 나무로부터 받은 은혜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남에게 피해 주는 일 없고 지혜를 가르쳐 주는 나무를 스승으로 여겨온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하늘 소풍 떠나시고 안 계시지만, 그립고 보고 싶은 분을 말하라면 부모님 다음으로 서슴없이 그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검소함과 부지런함으로 한평생을 살다 가신 그분께 많은 걸 배웠고, 우리에게 과분한 마음을 주셨기에 잊지 못하고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한 회장님은 지난 1996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으시면서 필생 나무 사랑의 보람을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회상하셨다. 아버지 같던 회장님이 참 많이 그립다.
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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