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풍경 - (35)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 도서관
캐럴뿐 아니라 벽·천창·열람실에도 밝거나 옅은 빛… 공간·행위·소리가 빛 속에서 통합
‘책 사이로 세계가 우리 앞에 놓인 곳’ 도서관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건물
그런데 정사각형 칸막이로 짠 서가를 높은 천장에 닿을 데까지 쌓아 올린 모습을 요즈음 도서관에서 많이 보게 된다. 이런 서가는 최근 신축·개축되는 도서관은 물론이고, 아파트 광고 영상에서도 품위 있는 커뮤니티 도서관의 아이콘처럼 나타나고 있다. 파주출판도시의 ‘지혜의 숲’에도 손을 뻗으면 5칸까지만 겨우 닿을 수 있을 뿐인데도 천장까지 무려 16칸이나 쌓은 서가를 모든 벽에 둘렀다. 덕분에 ‘지혜의 숲’은 스펙터클한 책의 숲이 됐지만, 애석하게도 이렇게 꽂힌 책들은 ‘지혜의 숲’을 이루는 나무의 잎사귀처럼 보인다.
스타필드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의 서가는 ‘지혜의 숲’보다 훨씬 높다. 높이가 13m로 3층 높이나 된다. 낮은 곳에 꽂혀 있는 책은 쉽게 꺼내 자주 읽히겠지만, 저 천장이 맞닿은 곳에 꽂힌 책들은 무슨 죄를 지어서 아무도 올라갈 수 없는 저곳에 유배를 가 있는지 불쌍하기만 하다. 멀리서 보이는 책들은 벽을 장식하는 모자이크의 한 덩어리일 뿐이다. 도서관인가 진열장인가? 그럴 리는 없겠으나 아주 저 높은 곳에 혹시 내 책이 꽂혀 있는 게 아닐까? 더구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스쳐 지나가는 책들은 마치 차창에 스쳐 지나가는 길섶에 핀 들풀과도 같다.
19세기 중엽 유럽의 대도시에는 대영박물관 부속 도서관 원형 열람실(1857)이나 파리국립도서관(1875)이라는 근대의 ‘지식 장치’가 출현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지식과 정보를 분류·보존·유통하는 시설이라는 점에서는 이전의 도서관과는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것이 이전 도서관들과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근대의 ‘지식 장치’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수한 책에 둘러싸인 채 현실 세계에서 벗어난 엄청난 공간에 들어가 있다는 감각을 극단적으로 보여줬다.
대영박물관의 원형열람실로 대표되는 ‘지식 장치’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모든 책이 당시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자기 책이 아닌데도 마치 내부에 집적된 지식 전체를 내가 다 소유한 것 같은 착각을 줬다. 여기에 벽 전체는 온통 책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공간은 외부의 현실과 완전히 차단돼 있었다. 그야말로 도서관은 문자 그대로 지식의 소우주였다. 동시에 이 ‘지식 장치’는 또 다른 감정도 불러일으켰다. 책을 집적한 장소이고 책을 읽는 장소임에도 저 모든 책은 절대로 다 읽을 수 없다는 일종의 숭고한 감정도 함께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은 수많은 책을 모아놓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전에는 책은 책 표지를 위로 해 테이블 위에 쌓았는데, 그 후에 서가에 꽂으면서 책을 세로로 세웠다. 이때는 지금과 반대로 책등은 뒤로하고 배는 앞을 향하게 세웠다. 도난을 방지하려고 표지 하단의 밑에 고리를 끼우고 그것에 쇠줄로 묶어 책과 책을 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책등을 정면으로 하고 서가에 꽂는 방식은 프랑스의 역사가 쟈크 오귀스테 드 타우(Jacques Auguste de Thou·1553∼1617)의 서재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아무튼 벽에 서가를 붙이고 책 제목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세로로 책등이 보이게 한 것은 도서관 공간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정사각형 칸막이로 짠 높은 서가에 책을 잔뜩 놓고 벽에 두르는 요즈음의 도서관 풍경은 19세기 이후의 도서관 방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다. 내부 전체를 덮고 있는 수많은 책에 언제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듯이 도서관을 ‘무슨 무슨 숲’이라고 부르지만, 실은 절반 이상의 책은 손이 닿지도 못하는 높은 곳에 꽂혀 있다. ‘무슨 무슨 숲’은 지식의 소우주를 번안한 것이고, 저 높은 데 꽂은 책은 수장된 책을 다 읽을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는 19세기의 ‘지식 장치’를 본뜬 것이다.
대영박물관의 원형열람실도 책이 거대한 원형의 벽을 덮고 있다. 당시 계속 출판되는 책을 한 방에 두고 관리할 수 없어 앤서니 파니치(Anthony Panizzi)는 책을 넣어두는 서고와 참고도서를 두는 열람실로 나누자고 제안을 했다. 이 방식을 최초로 채택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원형 열람실이다. 전체 소장 도서에 비하면 열람실의 도서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서고에는 많은 책이 소장돼 있었다. 이렇게 해서 실제의 책은 서고로 들어가고 그 대신 책을 ‘표상’하는 장서 목록 상자가 도서관 로비에 나타났다. 이 원형열람실의 그 수많은 책은 3층으로 나뉘어 있고 각층을 오르내릴 수 있으며, 층마다 난간이 있고 서가는 스스로 책을 꺼내 볼 수 있게 6단으로 만들었다. 이런 원형열람실 벽면에 비하면 최근에 나타난 우리 도서관은 차라리 책으로 수놓은 광고판이다.
“한 권의 책, 엄청나게 중요하다. 한 권의 책값을 제대로 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책을 인쇄한 값만 냈을 뿐이다.” 도서관의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 사람은 건축가 루이스 칸이었다. 그는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Phillips Exeter Academy)라는 명문 고등학교 캠퍼스에 도서관을 설계했다. 푸른 잔디와 나무들이 무성한 넓은 캠퍼스 안에 냉정할 정도로 단정하게 벽돌로 마감한 고전적인 분위기의 건물이다. 아이 엠 페이, 폴 루돌프, 필립 존슨 등 당대의 건축가들이 응모한 설계경기에서 당선했다.
루이스 칸은 서고와 열람실을 따로 떼어놓고 책을 서고에 숨기고 로비에 놓인 장서 목록을 찾게 하는 도서관은 “파일이나 목록을 급히 훑어보고 책을 찾는 곳이며, 책을 훑어볼 수는 있으나 그 책을 가지고 나올 수는 없는 곳”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는 책과 열람자가 더욱 동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고자 서고를 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안쪽에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공간을 두고, 바깥쪽 창가 주변에는 학생들이 개인적인 자리에서 책을 읽게 개인용 독서실(캐럴·carrel)을 뒀다. 이렇게 구조가 다른 두 개의 공간을 각각 ‘바깥 도넛’ ‘안쪽 도넛’이라고 불렀다.
도서관에 가는 사람은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에 칸은 “어떤 사람이 책을 들고 빛이 있는 곳으로 간다. 도서관은 이렇게 시작한다”고 말했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빛이 필요하므로, 공간은 빛에 대해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불행하게도 이런 생각을 잊고 지어진 도서관이 너무나도 많다. 또 혹시 이 말을 듣고 요새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시대이니 앞으로 점점 그렇게 책을 들고 빛이 있는 곳에 가지 않게 될 거라고 반론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도서관은 노트북을 모으고 빌려주는 곳이 아니다.
칸은 서고에서 찾은 책을 개인 공간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중세 수도자들이 옆에 있는 창에서 빛이 들어오고 책이 가득한 책장을 앞에 둔 테이블에 앉아 공부하던 도서관에서 얻은 이미지였다. 이 도서관에서는 마주 보고 앉아도 시선은 교차하지 않는 캐럴을 두었다. 학생은 공부하다가 옆에 있는 목제 패널을 여닫으며 빛과 캠퍼스의 풍경을 조절하며 공부하다가 밖을 내다보고 패널을 닫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서 그는 이 캐럴을 ‘방 속의 방’이라고 불렀다.
중앙 홀의 거대한 원형 개구부를 통해서는 4개 층의 서고와 그 안에서 움직이는 학생들의 모습이 모두 보인다. 입구 홀의 계단에 올라 중정 공간으로 들어오는 순간, 거대한 원형 개구부를 통해 보이는 이 풍경은 책이 자신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으며, 인간의 지식은 어떻게 전수되는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그래서 칸은 이 중정 공간을 “책이 초대하는 장소”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공간은 내가 원하는 책을 찾으려면 어디를 가야 하는지도 알게 해 준다. 이 중정 공간에서는 콘서트가 곧잘 열리는데, 연주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 도서관 전체는 하나의 커다란 방으로 느껴진다. 그 정도로 이 도서관은 공간과 행위와 소리가 빛 속에서 하나로 통합돼 있다.
엑서터 도서관은 캐럴에만 빛이 비치는 게 아니다. 빛은 네 방향의 벽에서도, 중정 공간 위의 천창에서도, 제일 위층의 열람실에도, 1층의 정기간행물실에도 들어온다. 이처럼 빛이 있어 책을 들고 갈 수 있는 곳은 도서관 전체에 산재해 있다. 루이스 칸이 “어떤 사람이 책을 들고 빛이 있는 곳으로 간다. 도서관은 이렇게 시작한다”고 말한 것은 이와 같이 밝은 빛, 옅은 빛이 두루 비치는 곳을 학생들이 자유로이 선택하는 도서관의 풍경을 두고 한 말이었다.
이 도서관에서 10년 동안 일했던 한 사서는 어느 날 3층 서가에서 즐겁고 행복한 빛을 경험했다면서 이렇게 회고했다. “이 건물의 전체적인 느낌은 마치 크루즈처럼 공기 위에, 물 위에 떠 있는 것과 같아요. 일하기에도 만족스럽고 읽고 그저 앉아 생각하기에도 정말 만족스러운 장소였어요. 중력의 중심이 밑이 아니라 위에 있어서 내가 늘 바닥 위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어요.” 단정하게 엄격한 외관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가벼움을 경험하며 일을 했다는 말이다.
도서관이란 사람이 책을 읽는 곳, 수많은 책의 풍경에 둘러싸인 곳, 사람이 책을 찾아 가까운 자리에서 책을 읽는 곳, 책으로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는 곳이다. 그뿐인가? 책을 찾다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곳,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빌린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나게 되는 곳이다. 도서관에서 책 찾기는 효율적이어야 하지만, 지식과 정보란 효율적으로만 찾아지지 않는다. 마치 숲 속을 산책하며 길을 찾듯이 이리저리 다니다가 찾게 되는 게 지식이고 정보다. 칸은 “도서관에서 테이블은 중정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중정에서 자유로이 행동하듯이 서고와 열람실이 구분됨이 없이 누구나 책을 읽은 자리를 자유로이 고를 수 있는 도서관이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짧은 문장이지만 21세기 지식과 정보에 대응하는 도서관의 모습이 엿보이는 말이다.
칸은 “이전에 어떤 도서관도 없었다고 생각하고 도서관을 설계한다”며 제도에 얽혀 지어졌던 도서관이 아닌, ‘도서관 이전의 도서관’을 근본에서 다시 물었다. 다시 읽어 보라. 이 말이 어려운 말이 아니다. 우리 동네의 도서관을 두고 “본래 도서관은 이랬어야 해”하고 물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우리도 ‘도서관 이전의 도서관’을 지을 수 있다. 또 그는 도서관은 “책 사이로 세계가 우리 앞에 놓인 곳이다”라고 했는데, 우리도 누구나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 동네 아이들이 책을 보며 이런 생각을 펼칠 수 있어야 해”하고 생각한다면 ‘도서관 이전의 도서관’을 지을 수 있다. 이 말에 모두 머리를 끄덕이고 계신가? 그렇다면 이것으로 필립스 엑서터 아카데미 도서관이 주는 교훈을 터득하신 것이다.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 용어설명
앤서니 파니치(Anthony Panizzi)
영국의 문학사가. 대영박물관 도서관장(1856∼1866)으로 이탈리아 고전의 교정·편집 및 서지(書誌) 작성에 많은 업적을 쌓았다. 도서관 신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특히 방사형(放射形) 대열람실과 갤러리를 이용한 서고(書庫)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이름을 남겼다.
쟈크 오귀스테 드 타우(Jacques Auguste de Thou)
프랑스의 역사가·법학자·정치가. 앙리 4세 때 왕실 도서관장을 지냈다. 낭트칙령 공포(1598)에 노력을 기울여, 30년간 계속된 신·구교 종교전쟁(위그노 전쟁)을 종식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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