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방(1916∼2008)

해마다 이맘때면 1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황금 들판에 서 계신 모습이 아른거린다. 아버지에게 나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죄스러운 일을 저지른 적이 있다.

농업고등학교 시절 나는 항상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면 집에 와서 농사일을 도왔다. 농번기였던 어느 날, 쌓인 농사일로 분주하신 어머니와 달리 동네 이장을 맡으신 아버지는 산소 자리 봐주는 일을 하느라 일손이 부족한데도 자리를 자주 비우셨다.

온종일 고생하고 속을 태우고 있을 어머니 생각에 산에서 돌아오신 아버지를 보는 순간 마음속에 쌓였던 분통이 터져 아버지가 아끼시던 패철(지관이 풍수 볼 때 사용하는 도구)을 집어 던졌다. 패철이 망가지면 아버지가 다시는 산소 자리 봐주는 일을 못 하고 힘들게 일하시는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함께할 수 있을 거란 짧은 생각에서였다.

만약, 내 자식이 내 앞에서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을 했다면 나는 엄하게 꾸짖었을 텐데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부서진 패철을 혼자 치우며 조용히 밖으로 나가셨다. 그러곤 그날 일에 대해선 돌아가시는 날까지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가진 재능으로 평생 이웃에게 베푸는 일을 하시며 동네에서 호인으로 소문난 아버지셨는데 철없던 시절, 나의 치기 어린 행동은 아버지께 용서받지 못한 채 평생 후회로 남아 있다.

나는 국가공무원이 돼 40여 년간 전국을 다니며 객지생활을 하다가 12년 전 정년퇴임 후 부모님을 모시고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퇴임 다음 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허망한 일이 벌어졌다. 큰 병 없이 93세까지 장수하시다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고 주위에서는 호상이라고 위로했지만, 천붕(天崩)의 슬픔이 어찌 쉽사리 잊히겠는가. 내가 국가공무원에 합격했을 때 신문에 난 합격자 명단을 오려서 소중히 간직하며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을 아버지가 요즘 들어 더 그리워진다.

나는 아버지가 일구신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지으며 농촌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기계화로 논농사가 그렇게 힘들고 어렵진 않다. 트랙터를 이용해 논에 모도 심고 탈곡까지 한다. 거기다 농협에서 수매까지 해 주니 요즘엔 농사 짓기가 아주 편리하다. 며칠 동안 땀을 흘리고 나면 비로소 일 년의 농사일이 시작된다. 논에 물을 대려고 밤이고 새벽이고 논을 지켜가며 고생스럽게 일하시던 아버지의 휘어진 등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버지는 가을이 되면 힘들었던 일을 뒤로하고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며 자식들 입에 밥 넣어줄 생각에 흐뭇하셨는지 나에게 “아들아 올해는 풍년이다”를 힘차게 외치시며 일 년 먹을 쌀을 한꺼번에 보내주셨다.

나는 가족들과 식사할 때면 늘 자식들에게 “할아버지의 땀과 정성이 담긴 쌀로 지은 밥이니 한 톨도 남기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나는 얼치기 농사꾼이다. 물론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왔기에 농사일에 대해서는 부족한 점이 많다. 논농사를 짓는 이웃에게 아직도 언제 논에 물을 덜 주고 더 주고 해야 하는지를 묻고 배우는 중이다.

추석 무렵이면 벼가 하루가 다르게 누릇누릇 익어간다. 들판에서 누런 벼를 보시며 “풍년이다”라고 소리치시던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둘째 아들 류주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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