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분노의 시대’ ‘증오의 시대’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아성이라 부를 만한 미국은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남북전쟁 이후 최악’ 수준의 내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양극화와 인종 차별에 대한 불만이 백인 경찰의 과잉 대응에 따른 잇단 흑인 사망 사건으로 폭발했습니다. 난민 위기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강타당한 유럽은 극우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광풍에 휩싸였습니다.

우리 사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친문(친문재인)·반문 진영의 감정싸움은 갈수록 격해집니다. 성과 계층에 따른 혐오와 갈등도 위험 수위를 넘어섰습니다.

최근 출간된 마사 누스바움의 ‘타인에 대한 연민’(임현경 옮김, 알에이치코리아)은 이런 혐오의 시대를 어떻게 건너갈 것인지에 대한 길잡이가 될 만합니다. ‘정치적 감정’을 키워드 삼아 인류가 맞닥뜨린 철학적 주체들을 검토해 온 저자는 현재 우리가 겪는 위기가 ‘두려움’이라는 감정에서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태어난 뒤 오랫동안 타인의 손에 생존을 의지하는 인간에게 두려움은 “시간순으로도, 인과적으로도 가장 기본적인 감정”입니다.

문제는 두려움이 “이성적 사고를 막고, 희망을 독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협력을 방해한다”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미래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흔히 이민자나 소수인종, 여성 등을 ‘타자화’해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식의 근거 없고 성급하고 위험한 결론에 도달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저자는 분노와 혐오, 시기 등을 두려움이 낳은 ‘세 개의 괴물’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인간의 본성과도 같은 두려움이 잘못 발현되는 걸 막는 게 중요합니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은 것은 ‘두려움에 맞서기 위한 두려움’ ‘분노에 맞서기 위한 분노’를 경계하라는 저자의 메시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부당함에 분노해야 정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고통을 안긴 사람을 향한 ‘응보적 분노’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는 것, 즉 타인의 인간성을 포용하면서 그들이 저질렀을지 모르는 잘못된 행동만을 반대하는 게 대안으로 제시됩니다. 저자는 “맹수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결국 그 발톱에 당하는 오류”에 빠져선 안 된다고 말합니다. ‘괴물과 싸우려다 괴물이 돼선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오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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