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삼손이 맨손으로 사자를 제압한 성경 속 이야기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꽤 익숙하다. 19세기 유럽의 탁월한 삽화가였던 귀스타브 도레(1832∼1883)는 월트디즈니 동화처럼 각인됐던 이 이야기를 ‘살아 있는 역사’로 복원해낸다. 삼손의 다부진 몸과 몸부림치는 사자의 모습에서 힘과 고통이 동시에 느껴진다. 꿈틀대는 삼손의 머리카락은 어떤가. 스스로 그 ‘괴력’의 원천임을 증명한다. 이는 도레의 세밀한 선과 터치 때문인데, 고흐와 피카소도 매혹됐다는 바로 그것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샤를 페로의 ‘장화 신은 고양이’, 라퐁텐의 ‘우화집’ 등에 생명을 불어넣었던 도레는 ‘근대 일러스트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단테의 ‘신곡’에도 삽화를 실었고, 이 책이 대중적 성공을 거두면서 확고한 지위를 얻었다. 삽화가 텍스트를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명화로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도레가 19세기 유럽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그가 여러 사료와 학문적인 자료에 입각해 그려낸 수많은 성화(聖畵) 덕분이다. 특히 그의 판화성서는 19세기 부르주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는데, 이 성서를 소장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자랑거리였다. 또 그의 삽화 책들은 에두아르 마네와 클로드 모네 등 당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과 비슷한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한길사가 최근 선보인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성서’는 도레의 성화 241점을 담았다. 구약과 신약성서뿐 아니라 외경의 내용까지 포함한다. 도레의 경이롭고 환상적인 그림에, 신상철 고려대 교수의 해설이 곁들여져 성화를 보고, 성서를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책은 앞서 크고 화려하게 제작돼 사랑을 받았던 한정판을 4분의 1 크기로 줄인 보급판이다. 수많은 독자의 요청으로 작고 알차게 재출간됐다. 528쪽, 3만5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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