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르테르’ 극본 고선웅

“요즘 사랑은 계산이 많아 보여요. 쉽게 시작하고 간단히 마무리하죠. 좀 더 깊어도 되고, 좀 더 상처받아도 되지 않을까요.”

고선웅(사진)은 뮤지컬 ‘베르테르’의 극본을 쓰면서 사랑의 본질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푸르른 날에’ 등으로 유명한 그는 국내를 대표하는 연극쟁이지만, ‘아리랑’ ‘원더풀 라이프’ 등의 뮤지컬 제작에도 참여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그가 2000년 초연 때부터 극본을 맡은 ‘베르테르’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삼았다. 초연 당시 PC 통신 팬카페를 기반으로 ‘회전문 관람’ 열풍을 낳으며 1세대 뮤지컬 애호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벌써 20년. “후다닥 지나간 세월에 수염은 하얗게 변했고 배도 불룩 나왔지만, 여전히 ‘젊은 베르테르’를 보여드릴 수 있어 기쁠 따름”이라는 고선웅을 서면으로 만났다. 지난 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에서 개막한 공연은 11월 1일까지 이어진다.


“20년 전만 해도 ‘편지’가 흔했죠. 편지를 부치고도 ‘잘 갔나’ 노심초사하고, 집배원 아저씨를 기다리던 시절이었죠. 많이 불편했지만, 지금보다 못하다는 말은 못하겠어요.” 고선웅은 소통의 매개가 ‘편지’에서 ‘전자메일’로 바뀌는 사이, 사랑의 방식도 간편하고 가벼워진 것 같다고 했다. “수신 여부를 바로 알 수 있는 전자메일은 빠르고 편하죠. 대신 상대를 향한 그리움도, 조바심도 사라졌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영혼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베르테르의 ‘옛날식 사랑’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되새겼으면 해요.”

작가는 각색할 때 인물들을 하나의 키워드로 ‘단순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에 긴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담기 위한” 선택이었다. “베르테르는 ‘불’, 로테는 ‘자유’, 알베르트는 ‘얼음’, 오르카는 ‘어른’, 카인즈는 ‘베르테르의 또 다른 자아’로 설정했죠.” 이 때문에 캐릭터들은 다소 전형적이지만, 이 가운데서도 술집 주인 오르카는 베르테르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으로 “타인의 삶을 인도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로테에게 약혼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 베르테르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시고 싶을 땐 끝장을 보는 것도 좋아요.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어서 울음을 아예 말려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라우.”

고선웅은 감염병 사태에 공연장을 찾는 관객에게 특별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선뜻 보러 오시라고도, 오지 마시라고도 못하겠네요. 다만 극장은 열려 있고 ‘베르테르’는 계속되고 있어요. 상황이 어떻든 우리의 사랑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말만 하고 싶어요.”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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